일상 에세이. 아리스토텔레스, 나의 외로움을 설명해 주세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흔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는 세네카가 희랍어 텍스트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역사적으로 되풀이되면서 원본보다 강한 생명력을 얻게 된 일종의 오류이다.
그럼,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말로 이야기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의 의미는 무엇인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표준국어 대사전)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다. (데이비드 이스턴)
어렵다. 공통적인 것은 권위와 권력, 사회적 가치의 분배 과정 중에서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질서를 정립하는 행위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행위가 이루어지려면 결국 지향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를 검증해야 하고 이해 조정 속에서 논쟁과 토론이 뒤따르는 것은 분명한 전제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은 주요 초점은 아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나 '정치'라는 것을 심도 있게 탐구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물론 관련성이 있어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라는 말이다.
논쟁과 토론은 피곤한 일이다. 지향하는 가치를 치열하게 검증하는 것은 어쩌면 지난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결국 기대되는 이상적인 세계를 현실화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므로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일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몹시 주관적인 느낌이 들지라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인간은 외로워진다. 정치라는 행위에 건강하게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는 부분에서 그저 관조자처럼만 서있게 된다면 그것만큼 지루하거나 무미건조한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관조자로서 완벽한 이성적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 인간이 정치적인 동물이 맞는다고 한다면, 때론 정치적인 과정에 참여하지 못할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잡설이 길었다. 앞의 말을 무시해도 좋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설렘과 외로움이 오늘 하루 내 안에서 여러 번 교차했고, 그냥 나는 왜 그런 것 같은지 아리스토텔레스와 정치를 가지고 와서 합리화를 시키려고 했을 뿐이고, 지금도 외로움을 쓰게 삼키며 잠에 드는 것만이 나름대로 의연하게 견디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싶을 뿐이고, 그 과정을 그저 글로 남겨보고 싶었을 뿐이다.
윤동주 시인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나도 '설렘과 외로움의 중간 어디쯤에서 의연한 척 견디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