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이 부수어진다면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밀란 쿤데라
예전에는 모든 게 똑바르고 정확한 줄 알았다. 질서 정연하게 굴러가는 세계에 감탄하곤 했다. 일목요연하게 흘러가는 인간의 이야기는 겹쳐지고, 그럴 때마다 삶이 확장되었다. 가끔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깊이 남을 때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서 삶에 진득하게 임해보니, 내 옛적의 사유는 한 없이 얕았음이 확실했다. 물론 지금 와서 헛되다고 할 만하진 않으나, 그럼에도 반쪽짜리라는 것이다.
특히나 어떤 것이든 모두 의미 있다는 말이 그렇다.
내가 겪던 고통은 충분히 감당할 만했던 걸까. 예전에도 이겨왔으니 또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이후에 내 삶의 거름이 될 거라는 희망, 이런 것들이 충만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걸까.
짧지만 조금 더 살아보니, 그럴 전부 뒤엎어버리는 순간이 가끔 찾아왔다. 옛적의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신감과 희망이 전혀 힘을 못 쓸 정도의 거대한 자연재해 같은 사건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슬픔은 떼로 오지만, 기쁨은 스쳐가곤 한다.
내게 있던 모든 의미가 부수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다시 말해, 고통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것도 자주.
그 순간의 내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당최 내가 왜 숨쉬고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 순간 덕에 나는 인생에 대해 다르게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사물이든, 사건이든, 나에게 의미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는 않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허면, 삶은 의미 있기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의미가 다가오는 걸까? 그렇다면 언젠간 미결의 사건으로 남아 상실의 슬픔을 줄 무언가가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여태껏 배우고 익혀왔던 세계의 정의가 무너지는데, 이걸 붙잡을 수는 없는 걸까?
절박함에 고동치듯 흔들리던 내게 다가온 문장은 바로 ‘무의미를 사랑하라’는 한 마디였다.
살결로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 세상 모든 게 정해지지 않고, 항시 바뀌기 십상이라, 살아간다는 건 그런 불규칙과 조율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이다. 나는 지금 그것을 배우고 있다. 그렇게 박자를 맞추기 위해 무언가에 대하여 파헤친다.
거기서 발견한 ‘무의미’가 내게 다가온다.
우리가 정말 무의미를 사랑할 수 있다면, 즉, 대상이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의미 있지 않아도, 그저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한 번 사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법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