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대하여

오로지 슬퍼하는 시간을 위해

by Blooboii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4



아이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떼를 쓰는 것이다. 사실 이 아이는 진짜 슬프기 때문에 우는 중이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우는 것이다. 먹고 싶고, 자고 싶고, 가지고 싶고,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운다.


머리가 자란다는 건 눈물에 진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한가 보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시절은 지났다. 세상은 내 원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톡톡히 배웠으니 말이다. 일찍이 철이 들었다 생각했을 때는 눈물을 참았는데, 철이 덜 들었음을 인정하고는 눈물을 더 흘린다. 어른은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보고 울 수 있는 사람인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렵다. 응당하다고 생각되는 요구에 침묵하는 세계가, 바라는 바를 모조리 앗아버리는 운명이, 내가 마주한 모든 지옥 같은 순간이. 나는 눈물을 잘 흘릴 수 있게 된 것이지, 내 아픔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었다.


어떤 오기로 인하여 나는 텅 빈 순간에 거울을 보고 웃음을 억지로 들어 올린다. 꽤나 성실하다. 어찌 되었든 지킬 도리를 위해 힘을 쓴다.


그것 또한 무너질 찰나에 나는 투지를 끌어올린다. 고통에 무너지지 않겠노라고 말한다. 이미 무너진 것을 알았으니 내가 이긴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그리고는 동정을 거절한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소진된 열정과 무의미의 침범이었다.


열의를 다하여 싸워 보았건만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내게 다가온 상실의 아픔에 성장통이라는 의미를 축여야만 버틸 만한 마음에 의심을 품을 즈음에, 나는 눈을 들어 올린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구나, 이런 마음은.


사실 그래도 괜찮은 것이구나.


어떻게 모든 순간에 ‘그렇다, 나는 그게 좋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나는 그것을 인정하여 나를 위로하고 있을 뿐이었나? 그런 질문을 스스로 되묻는 나는 지금 얼마나 비참하며, 얼마나 위대한가? 내 순간에 다가온 통각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왔는가?


빈번히 다가오는 질문을 쏟아내고 뱉으니, 눈물이 범람하여 내 속에 가득 엉겨 붙는다.


그래, 충실히 쏟는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저 내뱉는다.


수풀이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온다. 내 뺨을 싸리듯 지난다. 손길로 눈을 비벼본다. 금세 녹아 사라진다. 결정이 서로를 솎아내며 내려가다 바닥에 얼어붙는다. 흰 눈 밭에 걸음이 많이 쌓여있다.


희뿌연 하늘에 그늘이 드리웠다. 나무가 흔들린다. 눈이 녹아 떨어진다.


지금은 슬픔을 제외한 무엇도 없다. 고개를 든 순교도 없다. 투철한 싸움도 없다. 돌을 굴리는 영웅도, 초인도, 나를 부르는 누군가도 없다.


그저 순간만 있을 뿐이다.


슬픔이 나와 함께 있는, 이 짧고 아릿한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