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을 기다리며
모든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
- 마르틴 부버
우리가 우리라는 이유로 겪는 지독한 운명 하나를 꼽아본다면 그것은 바로 몰이해이다. 타자는 인간의 생애에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번역되지 않은 그 사람의 말은 흩어진다. 이내 굳은 기다림으로 그들의 말을 애써 분해하려 해도 그것은 닿지 않는 무언가를 향한 절실한 구애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의도와 실재의 불응. 그것들은 분절되고 이내 달리 행동한다. 나의 의지가 상대를 향하나 상대의 해석과 나의 오욕이 헛되어 증오와 실망을 야기한다. 그것의 시작이 곧 자기 중심성이다. 자신의 말들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확증. 이토록 비참한 자기 방어, 그리고 자기 과잉. 그렇게 굴레를 타고 흐르는 증오들은 돌고 돌아 거대한 순환을 이룬다.
부모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겪은 폭력을 반복한다. 친우는 험담을 나눔으로써 죄의 동반자가 된다. 무리는 모여 우상을 숭배하고, 공인을 주무르며, 강자를 멸시하되, 스스로 외면한다. 사회는 억압의 장치가 되고 구조는 피폐해진다. 권력자들은 약자를 억압한다. 이 모든 것 사이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
젊은 시인이 노래하기를 - 비참함이여, 우리 인생의 슬픔이여. 태어난 시절부터 맞이해야 하는 이토록 막연한 세계여. 흔들리기 마지않는 갈대 같은 인생이 드넓은 우주에 던져져 질문을 새겨도 꾹 닫은 눈으로 우리를 보는 절망으로 인하여 오늘을 더럽힌다. 좁은 시공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하늘을 바라보건만 그곳에는 분노가 그득하다.
이성은 배우려 했건만 앓는 인간성을 잃었다. 초인은 극복하려 했건만 무너짐의 아름다움을 잊었다. 되묻는 자도, 학자도, 예술가도, 이리도 한낱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는 인생에 대해서 어린아이와 같다니.
승패를 겨루기에는 인생은 덧없다. 과열된 채로 살기에는 난 너무 약하다. 내가 있는 이곳에는 오로지 기다림, 기약 없는 기다림, 사랑하는 이를 항시 기다리다, 이내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서 기다림이 나 자체가 됨으로써 삶의 일부로 변환된 기다림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 건졌기에 손해 보는 삶은 아닌 것인가.
하염없는 부재의 자리를 마음 한편에 두었다. 공백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손에 쥔 붓을 멈추었다, 여백은 곧 무無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렇게 전혀 새로운 방식을 통해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또한 그리고 있다. 언젠가 닿았던, 그리고 닿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을 향해서 애도 섞인 통증을 견디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여러분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리하여, 이 우주를 이루는 구심력과 중력, 갈피를 잡고 흔들리듯 이끌리는 모든 물리 법칙과 화학 작용, 동시에 이 우주를 이루는 형상들의 진동을,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랑을 본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쓰라린 비극과 절실한 고통들, 모두의 언어와 말씨, 몰이해의 터전 속에서도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는 그 고통이 다시 다가와 나를 완전히 망가트리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사랑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나는 살아있다. 오로지 이유 없는 사랑으로 인하여.
죽기 전까지,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