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은 후배들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by 박은석


나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과목은 한국어교육이다.

흔히 말하는 국어교육이다.

중고등학교 교단에 서는 게 꿈이었다.

중고등학교의 국어교사가 된다면 학생들을 멋지게 가르치고 싶었다.

대학 4년 동안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 중의 하나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왔는데 우리처럼 공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중고등학생도 공부의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같은 학과 친구들과 참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주고받았다.

무엇이 참교육인지는 각자 생각하기에 따라 달랐지만 머릿속에 교육을 통한 유토피아를 그릴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모든 기초는 교육이 다져놓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잘 가르치면 사회가 훨씬 좋아지고 학생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어디까지나 바람이었다.




졸업을 하고 학교 현장으로 간 선배들이 캠퍼스로 다시 돌아올 때가 있었다.

1년에 한 번 있었던 홈커밍데이 때였다.

투사와 같았던 선배들이었으니까 학교 현장에서 참교육의 선봉장이 되어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가 본 선배들의 모습은 내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세등등하게 떠나갔는데 몇 달 사이에 잔뜩 찌들어버린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선배들은 제도권 안에 갇혀서 옴짝달싹하지도 못한 채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자신의 바람대로 참교육을 실천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선배들은 막걸리 사발을 부딪치면서 “위하여!”를 외쳤다.

무엇을 위하는 것인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선배들의 꿈과 이상이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꿈과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같은 것임도 알 수 있었다.




과연 참 교육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인간스러운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을 존중하는 가운데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고 우리 사회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가르침의 대가인 한 사람이 떠오른다.

교육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동양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사람을 떠올린다.

2,500년 전에 살다가 간 사람.

바로 공자이다.

한때 그에게서 배우려고 몰려든 제자들만 해도 3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고대사회에서 그 정도의 인원수라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공자에게서 무엇을 배우려고 했을까?

그리고 공자는 그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자와 공자의 교육을 연구한다.

공자의 가르침을 기록하여 정리한 책인 <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고 익히라는 가르침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않은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말로 시작하는 <논어(論語)>는 온통 교육의 책이다.

그래서 논어를 공부할수록 배움의 깊이가 깊어진다.

그런데 공자는 우리가 아무리 배움의 깊이를 깊게 가졌다고 하더라도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 뒤에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서 공자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가르쳤다.

후학들은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미래에 태어날 그들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어째서 그들이 나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느냐 하면 그들은 나의 지식을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배들이 나를 밟고 가는 것이 기분 나쁜가?

그럴 수 없다.

나는 기꺼이 후배들을 위해서 등짝을 내밀어주어야 한다.

나를 징검다리 삼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참교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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