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 아들의 이름

by 박은석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딸 셋을 내리 낳으신 후에 나를 얻으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의 특별 관심 대상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뒤이을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나에게 훈계를 하셨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다정다감하게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의 훈계는 내가 사춘기가 되어 나만의 방 안에 틀어박히기 전까지는 계속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훈계를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어디 가서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한 뒤에서 힘껏 밀어줄 테니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아버지의 바람을 이루기가 수월했다.

나와 경쟁하던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환경이었으니까 조금만 빨리 뛰면 내가 1등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보시며 아버지는 뿌듯해하셨다.

동네방네 다니시며 자랑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언제나 그럴 줄 알았다.




중학생이 되어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게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세상은 넓었고 아이들은 많았다.

내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나보다 먼저 뛰는 친구가 있었고 나보다 더 잘 뛰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출발선부터가 나하고는 매우 달랐던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하루 스물네 시간이라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셨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이므로 그 시간을 잘 살리라고 하셨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루 스물네 시간을 보내면 기울기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알려주지 않으셨다.

그런 난관들을 극복하면서 내가 선두 그룹에 낀다는 것은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반 아이 60 명 중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튀지도 않는 한 명의 보통 아이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이름에 금칠을 해 드린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천만 명이 산다는 서울에 오고 나서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나와 내 아버지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 고향마을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고 어디에 가서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하는 일이 달랐고 원하는 삶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오른쪽 길을 택해서 달리려고 했는데 옆 사람은 왼쪽 길을 택해서 달리려고 했다.

그 길이 괜찮냐고 하면 좋아 보인다고 했다.

이제껏 나는 오른쪽 길이 정답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길로 반듯하게 가야만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길로 가면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는 줄 알았다.

내가 세상을 몰라도 한창 몰랐었다.




결혼을 하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아들을 낳았다.

나도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

아들을 보면 못다 이룬 내 청춘의 꿈들이 보였다.

나는 오른쪽 길을 택해서 왔는데 아들이 왼쪽 길을 정복한다면 두 길을 모두 얻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실수도 하고 잘못도 했기 때문에 이만큼밖에 못 왔는데 내 아들은 나를 넘어서 저 멀리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아들에게 대놓고 말씀하시기가 어려우셨기에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아들에게 그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버지 시절에는 그런 세상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은 아버지인 내가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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