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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0. 2023

나 자신이 싫어질 때는 나를 불쌍히 여길 때이다


가끔은 나도 나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다.

보통 때는 나의 높은 우월감과 자만심에 취해서 나는 참 괜찮은 놈이라고 마음먹고 다닌다.

그런데 아무리 우월감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이 꼬꾸라질 때가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그다음에는 내리막길이 기다리듯이 마음도 높아지면 그다음에는 낮아진다.

그처럼 나도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니 더 낮아져서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쫄딱 망해버린 우리 집안의 형편이 눈에 들어올 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잘 놀다가도 집안 이야기들이 나오면 조용해졌다.

아! 그때는 학교에서 호구조사도 많이 했다.

집 식구는 몇 명인지, 텔레비전이나 냉장고가 있는지, 부모님의 학력은 어떻게 되는지, 별의별 것을 다 조사했다.

그런 조사를 할 때면 정말 나 자신이 싫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집도 싫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내 외모가 보기 싫었다.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고작 내 나이대에서 말하는 평균 키를 찍을 정도였다.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좀 트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 합창반 반장이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대학원 시절에 노래방에 간 적이 있는데 내 동기가 나에게 하는 말이,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찬송가처럼 부른다고 했다.

내 기억에 그다음부터 오늘까지 노래방에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남들처럼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싫었던 것이 있다.

혀 짧은 발음의 내 목소리다.

특히 ‘ㄹ’음을 발음할 때는 정말 곤혹스럽다.

‘ㄹ’음이 ‘ㄷ’음처럼 발음된다.

혈소대수술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볼펜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한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정말 싫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있으니 그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을 싫어하는 내 모습이 싫고 그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윤동주 시인이 <자화상>이라는 시를 썼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며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겠다던 윤동주도 자신이 싫었던 때가 있었나 보다.

하기는 세상 누군들 그런 때가 없을까?

누구에게나 그런 때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가 비로소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비늘을 한 꺼풀 벗는 시간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미워해 봐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보다 더 나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계속 미워해서는 안 된다.

윤동주처럼 다시 돌아가서 불쌍하게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면 고흐처럼 자신의 귀가 싫다고 귀를 잘라버리는 엽기를 행하게 된다.

자신이 못나 보일 때, 자신의 모습이 싫어질 때, 그때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야 할 때이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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