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베끼고 살 것인가?

by 박은석


나태주 선생의 시집을 읽다가 그가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지 고백하는 글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어린 아기는 시인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들을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시인인 사람은 없다.

어느 순간 시가 좋아지고 어느 순간 시를 노래하게 되고 어느 순간 시를 쓰게 되고 어느 순간 시를 짓게 된다.

나태주 선생도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었다.

처음에는 시를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 구절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아마 공책 한 권 마련해서 거기에 차곡차곡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둔 구절을 계속 읊다 보니까 어느 순간 시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한 줄씩 끄적이다 보니까 시가 되었고 매일 시를 노래하고 시를 쓰고 시를 짓는 시인이 되었다.

나에게 그가 시인이 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그가 좋은 시들을 베껴 썼던 필사의 시간이었다고 하겠다.




인간의 모든 창작물은 거저 태어나는 게 없다.

무엇인가로부터의 모방으로 태어난다.

예전에 있던 것으로부터 새것이 나온다.

옛 어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네 글자를 남겨주셨다.

시도 마찬가지다.

좋은 시는 옛 시인들의 시에서 영감이 떠올라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를 잘 쓰려면 좋은 시들을 많이 읽어야 한다.

좋은 시들을 많이 써 보아야 한다.

베껴 쓰는 거다.

따라 쓰는 거다.

필사의 노력을 하는 거다.

윤동주가 좋은 시들을 많이 남긴 배경에는 그가 백석의 시를 베껴 쓴 노력이 있었다.

아마 백석의 시집을 통째로 구입했다면 베껴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백석의 시집 <사슴>은 고작 100권밖에 출판되지 않았다.

당연히 윤동주는 한발 늦어서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시집을 빌려 통째로 베껴 썼다고 한다.

그렇게 윤동주는 시집 필사본의 원조가 되었다.




나태주 선생도 남의 시를 베껴 쓰다가 시인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시인이 되지 못한 이유는 베껴 쓴 게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베껴 쓴 시라고 해봐야 고작 몇 편 될까 말까이다.

그것도 한 번 베껴 쓰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좀체로 없었다.

아! 세상 모든 일이 베껴야 되는 일이었다.

잘 베껴야 잘 할 수 있다.

집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를 베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베꼈다.

사회에 나와서는 선배들을 베끼고 나보다 앞서간 이들을 베끼면서 살았다.

살아온 날의 단 하루라도 베끼지 않은 날이 없었다.

부지런히 남들을 따라 하고 부지런히 남들을 베끼다 보니까 어느덧 사람이 되었다.

내가 원숭이를 베끼지 않고 오랑우탄을 따라 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아마 그것들을 베끼고 따랐다면 내가 원숭이가 되고 오랑우탄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을 베끼고 살다 보니까 내가 비로소 사람이 된 것이다.




지금의 내가 완벽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더 다듬어야 하고 더 갈고닦아야 한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로부터 베껴야 한다.

그를 따라가야 한다.

아마 이런 작업은 평생 동안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지금까지는 잘 베껴왔는데 앞으로는 누구로부터 무엇을 베껴야 할지 잘 찾아보아야 한다.

무턱대고 아무것이나 베껴서는 안 된다.

그런 모습은 이미 지나간 시절에 많이 겪어왔다.

이제는 나에게도, 남에게도 유익한 것을 베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내 뒤에 오는 이들은 나를 보고 베끼려고 한다.

내가 오른쪽으로 가면 그들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고 내가 왼쪽으로 가면 그들도 왼쪽으로 틀 것이다.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장난질을 해서는 안 된다.

나도 잘 베끼고 남들도 잘 베끼게 해서 인생이라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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