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있다는 게 나로서는 참 감사하다. 매년 1월 1월이 되면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떤 결단을 한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더라도 ‘올해는...’하면서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생각을 한다. 그 속에는 내가 고쳐야 할 것들과 좀 더 힘써서 노력해야 할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는 진리가 있듯이 하루가 지나면 1월 1일에 세웠던 계획이나 생각들은 싹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일상생활에 맞춰서 허덕이며 지낸다. 한 주 두 주 지나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의 가속도를 늦추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쯤에 어김없이 설날이 온다. 그게 1월이든 2월이든 상관없다. 설날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해의 계획을 새롭게 쓴다. 아니, 1월 1일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들을 세운다. 이제야 비로소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마음이 든다. 한국인이어서 그럴 것이다.
사실 1월 1일에 세운 계획들은 굉장히 공격적이다. 뭔가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어떤 점에서는 허무맹랑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형편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질러대는 것 같다. 마치 복권 한 장을 구입하면서 이 복권이 1등에 당첨될 것이라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시작한 새해의 삶은 사나흘도 안 되어서 전년도와 비슷한 삶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먹은 대로 삶이 살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내 발은 땅에 붙어 있다.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면 나는 벌써 전 세계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있을 것이다. 1월 1일 이후 몇 주를 보내면서 나의 현 위치를 깨닫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한다. 그다음에 막연한 계획이 아닌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운다. 설날 즈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새해에 대한 구상이 가닥 잡힌다.
새해에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은 공부하고 있던 과정을 마쳐야 한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논문도 마쳐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업무들도 잘 해내야 한다. 사람들도 키워내고 조직도 안정시켜야 한다. 그다음에 내가 나아갈 새로운 세상도 물색해 보아야 한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벌써부터 긴장한 기색이 엿보인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필수 조건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아빠의 무관심이란다. 자꾸만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때처럼 공부하면 될 것 같은데 그때처럼 공부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딸아이를 위해서 최대한 무관심해야 한다. 아내는 나에게 새해에는 무조건 건강을 챙기라고 한다. 독서운동도 그만두고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도 그만두고 건강부터 챙기라고 한다. 어느 것 하나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새해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꽤 많다.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내가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 그것이 또한 새해에 내가 감당해야 할 큰일이다. 1월 1일 이후 정신없이 지내왔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추진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급급했었다.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게 되었는데 지나간 20일 동안의 시간은 꼭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설날이 왔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다. 앞으로 살아갈 2023년의 모든 날들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될 것 같다. 계획한 대로 살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면 바로 그날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 언제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삶이 될 것이다. 계획한 대로 일을 완성시키지 못하더라도 멋진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