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약속

by 박은석


한 세대가 지났다.

30년 전 그때도 설 전날이었다.

내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신 날이.

날짜도 그때의 날짜와 고작 하루 차이다.

1993년의 설날은 1월 23일이었고 2023년의 설날은 1월 22일이다.

어머니께 전화드려서 혹시 꿈속에서 뵈었냐고 여쭤보니 아직 못 뵌 것 같다.

가끔 꿈에서 뵙기는 하는데 뵐 때마다 싸운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결혼해서 아버지와 싸운 기억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정드는 것 아니냐고 말씀드렸더니 정 같은 것은 없다고 하신다.

거짓말! 부부로 30년을 함께 사셨고 그때의 정으로 또 30년을 홀로 사셨다.

그때는 앞날이 캄캄했다.

산 사람은 산다고 했는데 우리 식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살게 되었다.

삶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생명은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곧 끝날 것 같아도 끝나지 않는다.

질기고 질기며 강하고 강하다.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어느덧 나도 아버지의 나이만큼 나이를 먹었다.

내 아이들을 보니 아직도 애기 같다.

저 어린아이들을 두고 하늘나라로 간다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30년 전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셨을 것이다.

그때 내 막냇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갓 스물두 살이 된 내 어깨도 무거웠다.

어쨌든 내가 장남이니까 가장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혈관을 타고 돌았다.

물론 누나들이 있었지만 각자 자신의 가정을 돌보기도 바쁜 때였다.

해병대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첫 휴가를 나왔던 내 동생의 울부짖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침 점호 때마다 고향을 향해서 기도했는데, 부모님께서 건강하시도록 기도했는데, 이게 뭐냐고 했다.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왜 우리 식구들이 이런 가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지.

하늘을 향해 원망하고 싶었다.

원망해서 속이 후련해진다면 맘껏 원망하고 싶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어찌어찌 살아왔다.

30년 전 아버지가 쓰러지시던 그날 아침에 아버지에게 너스레를 떨면서 했던 말이 있다.

6년만 지나면 아버지 품에 손주 하나 안겨드리겠다고 했다.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6년이 지났을 때 안겨드릴 손주도 없었고 아버지의 손주가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안 계셨다.

그 품에 안겨드릴 수가 없었다.

인생의 통과의례라는 게 있다.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는 것, 군대에 다녀오는 것,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는 것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들이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버지 머리에 사각모를 씌워드릴 수 있었다면, 군인 계급장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면, 예쁜 색시를 데리고 가서 며느릿감이라고 인사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들에게는 너무나 간단하고 당연한 일인데 나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면서 내 맘속으로 또 하나의 약속을 했었다.

걱정하지 마시고 잘 가시라고.

어머니와 우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아버지가 없어도 정말 잘 살아가겠다고.

장남으로서 집안을 잘 지키겠다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아빠 사랑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었다.

아마 내가 아기였을 때는 그렇게 부르고 고백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그 겨울 설명절 전날이 처음이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30년을 살아왔다.

이만하면 아버지와의 약속 중에 절반은 지킨 것 같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황정민 씨가 할아버지가 된 후에 자기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릴 때, 나도 따라 중얼거렸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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