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삼촌 같은 그분이 있다

by 박은석


친인척은 아니지만 나를 조카처럼 대해주시는 어른을 만나고 왔다.

그분의 따님이 나와 동갑이니까 아버지 항렬에 이를 수 있는 분이다.

물론 성씨는 다르다.

내 아버지는 쉰셋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만약 살아계셨으면 그분에게는 큰형님뻘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그분이 작은아버지뻘 되는 셈이다.

어쨌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이지만 우리 두 사람이 만나면 삼촌과 조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 아버지처럼 그분도 젊은 시절에 산전수전 다 겪으셨다.

손재주도 많아서 연장 몇 개만 있으면 뚝딱뚝딱 집도 지으신다.

내 아버지도 그러셨다.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 혼자 집을 다 지으셨다.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다.

밤마다 아버지가 짓고 계셨던 집에 가서 잠을 잤었다.

누가 건축자재를 훔쳐갈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다섯 살 때부터 서울로 올라오기 전, 스무 살 때까지 그 집에서 지냈다.

나의 고향집이다.




그분은 내 삼촌 같은 분이시고 그분의 집은 내 고향집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언제든지 당신의 집에 찾아오라고 하신다.

고향집이라는 게 그렇다.

작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제라도 찾아가면 반가이 맞아주는 집이 고향집이다.

나에게는 그분의 집이 고향집 같다.

내가 간다고 연락을 드려도 마치 당신의 자식들이 오는 것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맞아주신다.

정리가 안 된 세간살이가 고스란히 보이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자가 없으면 앉을 수 있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는다.

발을 모으든 뻗든 자기 맘이다.

커피 한잔 마시자고 하면서 종이컵에 맥심 모카골드 봉지커피를 건네주셔도 기분이 좋다.

나는 평상시에는 에스프레소 커피만 마시지만 그분 앞에서는 봉지커피가 에스프레소 커피이다.

점심은 뭘 먹을지 묻지도 않으신다.

언제나 당신이 드시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이번에 찾아뵈었을 때는 보신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그 동네에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하셨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분이 칼국수를 먹자고 하시면 칼국수를 먹었고 짜장면을 먹자고 하시면 짜장면을 먹었다.

물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자고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뭘 먹든지 먹는 분위기만 좋으면 된다.

그래서 항상 그분이 먹자고 하시는 음식을 먹는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는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나보다 시간이 적을 것이다.

물론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분의 의견에 맞추려고 한다.

삼촌과 조카가 밥을 먹을 때 누구의 입맛에 맞춰야 할까? 나이 어린 사람의 입맛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연장자의 입맛에 맞추려고 한다.

그게 훨씬 낫다.




언제 사귀었는지 그분은 식당 주인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졸지에 나에게는 그분 말고도 삼촌 한 명이 더 생긴 결과가 되었다.

주인장께서도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려는 듯이 노력하는 기미가 보였다.

조미료는 한 숟갈도 쓰지 않으셨고 온갖 야채와 맛깔나는 양념으로 맛을 맞추셨다.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니었다.

살을 빼야만 하는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 냄새를 견딜 재량이 없었다.

딱 한 숟갈만 먹어보자고 했는데 딱 한 숟갈에서 멈출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 입맛을 조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교만이었다.

냄새만으로도 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입에 한 숟갈 넣자 입이 자동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분은 나에게 잘 먹어야 한다는 말만 했다.

마치 삼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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