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살리는 또 한 사람

by 박은석


미국 연안경비대 소속으로서 특별히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인명구조요원들이 있다.

그들은 거친 폭풍이 몰아쳐도 바닷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다.

바다에서 불이 난 배가 있으면 그 불타는 배에도 뛰어든다.

파도에 잠식당하여 침몰해가는 배를 향해서도 뛰어들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향해서도 뛰어든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허리케인이 불어 모든 선박이나 비행기의 출항이 금지되어도 그들은 간다.

조난당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그들은 간다.

훈련을 받으면서 그들이 외치는 구호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간다.

순리를 거슬러 거꾸로 사는 사람들 같다.

자기 생명도 하나이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하나인데 다른 사람 하나를 건지려고 자기 하나를 포기한다.




그들의 삶을 다룬 <가디언>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때 전설적인 인명 구조 요원이었고 지금은 젊은 훈련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훈련생들은 그가 과연 몇 명이나 구조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시끌벅적했다.

어떤 훈련생은 그가 200명 정도는 구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훈련생은 그가 300명은 구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의 후반부에 그들 중의 한 명이 주인공에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몇 명이나 구조했습니까?” 그때 그가 대답했다.

“스물두 명!” 순간 젊은 구조대원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고작 스물두 명을 구조했을 뿐인데 전설적인 구조대원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때 주인공이 말을 잇는다.

“지금까지 구조하지 못한 사람이 스물두 명이다.

나는 내가 몇 명을 구조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직 구조해야 할 사람, 구조하지 못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세상에 참 별난 사람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가끔은 ‘엄청난 재난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빨리 마트에 가서 라면을 몇 박스 사고, 물과 설탕과 또 휴대용 가스도 사고, 주유소에 가서는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이런 생각이 이어진다.

다른 사람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오직 나와 내 가족 생각뿐이다.

그런데 세상이 넓기는 넓은가 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사람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존귀한 분들이다.

어떤 분은 휴가철만 되면 배낭을 메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도와주러 간다.

어떤 분은 직업이 아예 남들 도와주는 일이다.

힘들지 않냐고 하면 힘들다고 한다.

위험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위험하다고 한다.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한 사람, 폭풍치는 파도 속에서 한 사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한 사람, 벼랑 끝에서 한 사람, 그들은 한 번에 한 사람씩을 살린다.

80억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고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80억 명이나 한 사람이나 똑같이 중요하다.

80억 명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였을 뿐이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지진으로 또 수많은 사람이 운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한 사람을 살렸고 지진 속에서도 한 사람을 살렸다.

어떤 이들은 지금 이 세상이 암울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미래 세상은 더 암울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언제나 한 줄기 빛을 간직하고 있다.

한 사람을 살리는 또 한 사람001.jpg
15110210A92BFA5B1F.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