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인이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

by 박은석


영국 출신의 미국 시인 에드거 앨버트 게스트(Edgar Albert Guest, 1881년~1959년)는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집안의 경제적인 사정이 급격히 쇠락하자 어린 나이의 그도 무엇인가 일을 해야만 했다.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려고 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록 학교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사람들 틈 속에서 인생의 다양한 교훈들을 배웠고 자신의 마음을 글로 옮기곤 했는데 그것들이 나중에 훌륭한 시가 되었다.

영국 왕실에서도 그의 시들을 좋아해서 가장 영예로운 시인에게 내리는 계관시인(桂冠詩人)의 칭호를 그에게 수여하였다.

계관시인이란 왕이 월계관을 씌워주는 시인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명예로운 직함이다.




앨버트 게스트는 평생 동안 무려 11,000여 편의 시를 지었고 총 43권의 저서를 발간하였으며 65년 동안 출판사에서 일을 하였다.

하루에 한 편씩의 시를 쓴다고 하더라도 30년 동안 꾸준히 써야 11,000편의 시를 쓸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엄청난 창작활동을 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무척 간단했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에 그가 앓아누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불덩이 같은 그의 몸을 끌어안고 엉엉 울면서 기도를 하셨다.

다음날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침대 한쪽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식은땀을 많이 흘려서 침대가 젖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간밤에 어머니께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그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인생을 대충 살 수 없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열병으로 앓아누웠어도 약 한 첩 구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아들의 머리를 끌어안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밤새도록 할 수 있었다.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 그런지 그의 시 <끝까지 해 보라>라는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강한 도전을 던져준다.


“네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주 보고 당당하게 맞서라.

실패할 수도 있지만,

승리할 수도 있다.

한번 끝까지 해 보아라!


네가 근심거리로 가득 차 있을 때,

희망조차 소용없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일들은

다른 이들도 모두 겪은 일일 뿐임을 기억하라!


실패한다면,

넘어지면서도 싸워라!

무슨 일을 해도 포기하지 말아라!

마지막까지

눈을 똑바로 뜨고,

머리를 쳐들고,

한번 끝까지 해 보아라!”




나는 종종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한답시고 힘을 내라는 말을 했었다.

포기하지 말라는 말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연 그 사람들은 내가 건넨 말을 듣고 위로를 받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처럼 들릴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말을 건네는 나 스스로도 단순히 한마디의 말만 건넸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앨버트 게스트의 어머니는 밤새도록 기도했다고 한다.

침대가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 긴 밤 동안에 어린 앨버트에게 힘을 내라는 둥, 포기하지 말라는 둥의 말을 할 필요 없었다.

그저 그 어린 손을 잡고, 철철 끓어오르는 머리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그것이 위대한 말이었고 위대한 행동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게스트는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우리에게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시인이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001.jpg

사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dgar_Guest_1935.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