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by 박은석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림이 곁들여진 얇은 책이어서 금방 읽히는 책이지만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책이다.

왕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왕자 앞에 붙은 ‘어린’이라는 말 때문에 생각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단골 대사인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일들이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어렸을 때가 인생 중에서 가장 좋은 때였다고 믿어진다.

어렸을 때가 제일 행복했던 때였다고 생각된다.

가만히 그때를 떠올려보면 사실은 그리 좋았던 때도 아니다.

지금보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불편했던 때였다.

굉장히 행복했던 때도 아니다.

억울한 일도 많았고 속상한 일도 많았다.

항상 어른들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 지금보다 더 불편하고 불행한 때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가 그리운 이유가 분명히 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게 다 신기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신기했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신기했다.

세상은 온통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마치 요술나라에 온 것처럼 이번에는 어떤 일이 펼쳐지려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어른들은 모자라고 하는데 아이의 눈에는 커다란 보아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것처럼 보였다.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아이들의 눈에는 그까짓 코끼리 한 마리쯤 잡아먹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했다.

수리수리 마수리 외치면 세상이 내가 외치는 대로 될 줄 알았다.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대통령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사장님도 되고 5층짜리 건물을 가진 건물주가 될 줄 알았다.

세상은 내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공간 같았다.

지금은 어린아이 시절의 그 대담한 꿈들이 그립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신기했다.




어렸을 때는 모든 새로운 일이 흥분되었다.

꽃을 보고도 흥분했고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을 보고도 흥분했었다.

꽃을 따려고 달려들었고 벌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이 “안돼!”라고 외쳤다.

어린아이의 생각에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 놀라운 것들을 보고 쓰윽 지나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관심을 가졌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이 놀랍기만 했다.

모두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 보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와!”하고 외치는 일이 내가 제일 잘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놀라는 표정을 짓고 흥분을 하면 어른들은 나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

흥분해서 방방 뛰는 나를 보고 어른들도 놀라워했다.

지금은 어린아이 시절의 그 탄성이 그립기만 하다.

그때는 날마다 흥분되었다.




어른이 되면서 세상에 대한 신비로움이 사라졌다.

짜자잔 하고 마법의 주문이 펼쳐지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고 믿게 되었다.

오직 내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야만 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고 나면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제크의 콩나무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고 단정 짓게 되었다.

산타클로스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신비로운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내 입에서 감탄의 소리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어제가 그제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흥분되는 일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뭐가 어때서?”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커다란 보아뱀이 코끼리를 잡아먹는다고 해도 별것 아니라는 듯이 스쳐 지날 것 같다.

신기한 것도 없고 흥분되는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의 연속이다.

이게 어른의 삶인가?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어린왕자>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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