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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08. 2023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것은 작은 불꽃이다


진화인류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게 된 것은 불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이 불을 만든 것은 아니다.

불은 처음부터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뜨겁고 모든 것을 삼켜버려서 잿가루만 남기는 불이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지금도 짐승들이 불을 무서워해서 불 근처에 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수만 년 전 인간들도 그랬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들의 먹잇감이 불타버리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다 타지 않고 불길에 살짝 그을린 정도의 고깃덩어리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냥을 해서 다시 짐승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깝기는 하지만 불에 타다 만 그 고깃덩어리를 먹게 되었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지금은 고기 익은 냄새, 고기 구운 냄새라며 군침이 돌지만 수만 년 전 인간들에게는 그 냄새가 생소했을 것이다.

그들은 늘 생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날은 어쩔 수 없이 생고기 대신 구운고기를 먹어야 했다.

한 입 덥석 베어 물었는데 입에서 기름기가 주르르 흐르고 고소했다.

뿐만 아니라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생고기를 먹으려면 수십 번을 씹어야 했는데 구운고기는 몇 번 씹지 않아도 소화가 잘되었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굉장히 단축될 수 있었다.

생고기를 씹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는데 구운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그 시간과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었다.

불에 굽고 삶은 음식은 쉽게 씹혔기 때문에 인간의 구강구조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포유류들에 비해서 인간의 치아는 매우 단출하고 크기가 작다.

인간의 머리에서 치아가 작아지니까 다른 부분에 여유가 많이 생겼다.

그 여유 부분을 뇌가 차지하게 되었다.

머리에서 뇌가 차지하는 비율을 조사해 보면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인간의 뇌가 머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치아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다른 짐승들은 송곳니와 어금니가 크게 발달했는데 인간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음식을 잘게 부술 방법이 치아 외에 또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불이었다.

어금니와 송곳니가 작아지면서 인간의 입에서 독특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소리들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짐승들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짐승들의 소리를 말이나 언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에게 엄청난 힘을 가져다주었다.

말을 통해서 인간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말을 통해서 인간은 과거의 정보들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는 엄청난 힘이다.

그러니 정보를 얻게 된 인간은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불의 사용으로 치아들이 작아지자 덩달아 입이 작아졌다.

그 대신에 인간의 머리에는 뇌가 더 크게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공룡처럼 거대한 짐승도 뇌는 자그마한데 인간은 몸집에 비해서 뇌가 엄청 크다.

뇌가 커지자 인간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다.

커다란 짐승과 싸워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술과 전략을 짤 수도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은 약하지만 두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강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직을 만들고 조직을 운영하는 경영 방법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형이하학적인 것도 생각하고 형이상학적인 것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적인 아름다움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가히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인간이 이러한 영예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그 작은 불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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