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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2. 2023

미련하게 사는 게 지혜롭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소경으로 또 3년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옛 어른들이 시집가는 딸에게 들려주던 말이었다.

시댁의 일에 대해서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말고, 귀가 있어도 듣지 말고, 눈이 있어도 보지 말라는 말이었다.

바보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서로가 편하다고 했다.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이라면 모를까 땅을 밝고 살면서 어떻게 입 다물고, 귀 막고, 눈 가리면서 살 수 있겠는가?

오늘날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하고,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들어야 하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보라고 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한다.

손해 보지 말고 챙길 것은 악착같이 챙기라고 한다.

설령 잘못한 일이 있어도 먼저 잘못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끝까지 우기라고 한다.

현대는 그렇게 살아야 똑똑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지 시대에 따라 가르침이 다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하는 사람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데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업을 위한 일은 노예들이 하면 된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아랫사람이 하는 일이고 양반은 손에 흙을 묻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던 그리스 사람들도 요즘은 어디 일자리가 없나 찾아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사정을 한다.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사람들도 요즘은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을 한다.

손에 흙만 묻히는 것이 아니라 기름도 묻힌다.

손에 뭐가 묻든지 간에 그게 돈이 되고 소득이 된다면 두 팔 걷어붙이고 달려든다.

뭐니 뭐니 해도 돈만 된다면 더없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오늘날의 그리스 사람들을 본다면 참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다들 저렇게 먹고사는 일을 하면 나라는 누가 이끌어가고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고 할 것이다.

조선시대 우리의 조상들이 오늘날의 우리들을 본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집안 망하는 꼴을 보겠냐며 야단을 칠 것이다.

상것들이나 하는 일을 양반 가문에서 버젓이 하고 있다며 남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할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참 미련하게만 보일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는 옛날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인다.

철학을 공부한답시고 만물의 기원이 물인지, 불인지 생각하고 토론한다고 해서 밥이 나오나 국이 나오나?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다고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당장 먹어야 할 먹거리도 없으면서 고상한 척하는 모습이 세상 둘도 없는 미련탱이처럼 보일 것이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뿐인데 옛날에 높은 지위의 있던 사람이 오늘날에는 미련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옛날에 미련했던 사람이 오늘날에는 현명한 사람으로 추앙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볼 때, 그의 오늘만을 보지 말고 그의 내일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오늘 모습을 보면서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변할 수도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내일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눈이 약해서 그의 내일을 볼 수 없다면 그냥 좋은 말로 매듭을 짓는 게 낫다.

그 사람이나 나이거나 우리 모두의 수준은 거기서 거기다.

다들 미련한 것 몇 개쯤은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자기 딴에는 똑똑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미련하게 살았다며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미련하게 살았는데 그게 복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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