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Mar 15. 2023

나도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가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 날짜를 잡아서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난다.

상견례라고 하는 이 의식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자리이다.

최대한 정중한 모습으로 만난다.

아무 장소에서나 만나지도 않는다.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을 시켜 놓고 만난다.

음식은 고급이지만 그 음식을 다 먹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상견례 음식만큼 음식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견례는 허례허식의 대표적인 자리 같다.

한 번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고 상대방에 대해서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러나 그 한 번의 만남으로서 상대방을 간파할 수 있다.

많은 시간 동안 함께 지내봐야만 상대방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상견례를 하는 것이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알 수 있다.

오히려 오랜 시간 만났어도 그 사람을 전혀 모를 수 있다.

사기를 당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자기가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었다고 고백을 한다.

이런 일들은 사람과의 만남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만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똑똑하고 열성적인 사람 같지만 그런 사람도 자세히 보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수없이 믿고 있다.

가령 나무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면 아프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믿는다고 했을 때, 그건 자신의 경험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 일을 알 수 있다.




1944년 6월에 미국은 일본과 계속되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의 전세는 미국의 승리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 일본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패망을 앞두고 있는 일본 군인들이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부대원 중의 25% 정도가 희생되면 항복을 선언했는데 일본군은 90%가 희생되어도 항복을 하지 않았다.

부상당한 병사도 기를 쓰고 싸우려고 하였고 그것도 안 되면 자폭을 하거나 폭탄을 안고 미군에게로 뛰어들었다.

미군으로서는 일본인들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라고 하는 여성 학자에게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였다.

이렇게 해서 <일본인의 행동 패턴>이라는 보고서가 작성되었고 그 내용을 간추려서 1946년에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 나오게 되었다.




일본 왕실의 꽃인 하얀 국화는 평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국화의 뒤에 칼이 있다.

전쟁과 광기를 즐기고 잔인하게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폭력이 일본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오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당신이 일본에 가본 적이 있느냐? 일본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길래 이런 글을 썼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실 그녀는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이 없었다.

단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을 통해서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일본에 관한 책들을 통해서 일본문화를 하나씩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도 일본에 대해서 가장 잘 파악한 책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요즘 일본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높은 양반 몇이서 자신들이 일본에 대해 잘 안다고 큰소리친다.

그들에게 이 책이나 한 번 읽어봤는지 묻고 싶다.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련하게 사는 게 지혜롭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