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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6. 2023

백성을 잘 살게 해야 군주도 잘 살 수 있다


조선 개국의 공신 중의 공신인 정도전은 조선이 백성들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백성들이 땀 흘려 열심히 살아서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국가도 백성을 살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

이 둘 중에서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둘은 함께 가는 것이고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를 다스리는 군주는 이 사실을 잘 알기를 바랐다.

제아무리 출중한 군주라고 할지라도 백성이 없으면 군주 노릇을 할 수가 없다.

군주의 힘은 백성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이 군주의 첫째 임무라고 여겼다.

군주의 자리를 흔히 하늘이 내려준 자리라고 믿었다.

그 자리에 앉아서 하늘이 내려준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하늘이 내려준 사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군주에게 있어서 백성은 곧 하늘이었다.




정도전이나 이성계뿐만 아니라 역사상 나라를 새롭게 열었던 창업 군주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백성들을 잘 다스리겠다고 큰소리쳤다.

동양의 왕들은 백성들을 불러 모아 놓고 천지신명께 맹세를 했다.

서양의 왕들은 교회에서 신부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서약을 하였다.

유학자들을 말살하고 서적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린 진시황제도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중국 전역에서 참새 잡기 운동을 벌인 마오쩌둥도 곡식을 위협하는 참새들을 박멸해야 인민들이 배불리 먹을 것이라고 하였다.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만들어버린 크메르루즈도 자신이 캄보디아에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자랑했다.

무력을 통해서 정권을 찬탈한 쿠데타의 주역들은 하나같이 자신이야말로 백성들을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줄 위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군주들은 자신이 정말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어버리는 것 같다.

리플리증후군이라는 증세를 앓고 있는 환자들처럼 처음에는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인데 계속 반복해서 말하다 보니까 자신이 정말 그런 존재라고 믿어버린다.

자신에게도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는데 하늘이 자기 아버지라고 우겨댄다.

프랑스의 왕인 루이 14세는 자기가 태양이라고 떠들어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손자인 루이 16세는 백성들에게 잡혀서 콩코드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태양의 손자라면 그렇게 비참하게 인생을 끝내지 않았을 텐데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후삼국시대의 궁예도 한때는 막강한 힘을 가졌었지만 말년에는 한탄강을 지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였고 포천 명성산에서 통곡하면서 생을 마쳤다.

만약 그들이 하늘의 자손으로서 하늘이 보낸 사람들인 백성들을 잘 먹여 살렸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군주라는 존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왕정국가라고 하더라도 군주는 형식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고 국정은 다른 사람이 돌보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권력이 군주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백성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런 정치형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도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대물림하지 않는다.

백성들이 자기 손으로 뽑는다.

한 번 그 자리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아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잠시만 머물러 있다가 내려와야 하는 자리이다.

백성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둔 세금에서 아주 조금 월급을 받고 살아간다.

자기는 군주라고 착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도 백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자기는 백성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백성이 망하면 그도 망한다.

그러니 백성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백성들을 잘 먹여 살려야 한다.

그래야 자기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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