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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7. 2023

공부 잘하면 공부로 먹고살고 일 잘하면 일로 먹고산다


경기도 양평에 다녀왔다.

한 5년 전에 그곳에 땅을 조금과 비닐하우스 몇 동을 구입해서 농사를 짓고 계신 아주머니가 계시다.

전화할 때마다 한번 들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간다고 간다고 대답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는 차마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아서 마음먹고 시간을 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어서 그런지 양평 가는 길은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가량 운전을 해서 도착했더니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기가 무섭게 아주머니께서 뛰어나오셨다.

오래 기다리셨던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번이나 창밖을 내다보고 집 밖에 나와서 서성이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하셨다고 한다.

분명히 나도 한 시간 정도는 걸릴 거라고 말씀드렸고, 당신도 한 시간은 걸릴 거라고 하셨다.

그랬으면서도 그 한 시간을 마냥 기다릴 수가 없으셨나 보다.     




문득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왕자가 사막의 여우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는 말이다.

<논어>에서도 이 비슷한 말이 나온다.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온다면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맞다. 맞는 말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기쁜 게 사람의 마음이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공기 맑은 곳에서 흙을 만지며 살기 때문인지 아주머니의 얼굴이 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뱃가죽 시계가 밥 먹을 때가 되었다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며 자리를 옮겼다.

역시 사람은 만나면 먹어야 한다.

시골에 왔으니까 시골스럽게 먹어야 한다며 그 땅에서 재배한 식단으로 차린 음식이 한 상 나왔다.

깨끗하게 비웠다.




그간의 안부도 나누었고 배불리 밥도 먹었으니 그다음 차례는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다.

가는 길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릴 테니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면 시간 계산을 잘 해야 한다.

하지만 그냥 갈 수는 없다.

뭐라도 챙겨야 양평에 온 보람이 있다.

떠나보내는 아주머니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기색이 여력하였다.

당신이 재배하는 돈나물부터 한 대야 따 오셨다.

돈나물 농사를 5년 짓더니 이제는 프로선수가 된 듯했다.

비닐하우스 옆으로 미나리도 심어 놓으셨다.

그것도 한 대야 따셨다.

길에 널린 게 냉이라며 호미를 쥐고 이번에는 냉이도 캤다.

순식간에 냉이가 한 봉지, 두 봉지, 세 봉지 채워졌다.

아저씨는 잠깐 자리를 비우시고 나타나시더니만 손에 달래를 한 움큼 캐 오셨다.

오늘 저녁에는 양념장을 만들어서 나물을 버무리고 삼겹살을 구워서 쌈 싸 먹으면 되겠다며 저녁 메뉴까지 정해주셨다.




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봄나물을 캐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잠깐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시골 어른들은 저 많은 풀들 중에서 어떤 게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어떤 게 먹을 수 없는 것인지 어떻게 분별하게 되었을까?’

‘대충 보시는 것 같은데 그곳에 냉이가 있고 달래가 있는 걸 어떻게 보셨을까?’

이런 생각들이었다.

대학 공부를 마치고 대학원까지도 졸업했지만 나는 솔직히 달래나 냉이를 찾으라면 도무지 찾지 못할 것 같다.

제 눈앞에 먹거리가 널려 있는데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나보다 가방끈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수북하게 먹거리를 구해오신다.

이런 걸 보면 공부를 잘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분들의 말이 틀린 것 같다.

공부를 잘하면 공부로 먹고살고, 일을 잘하면 일하는 것으로 먹고살 것이라고 해야 맞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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