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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5. 2023

중남미문화원과 함께 꿈을 꾸는 세상


3월 중순인데 요 며칠은 5월 중순의 날씨를 보였다.

3월이면서도 5월에 맞게 준비해야 할 판이었다.

여하튼 따뜻해진, 아니 더워진 날씨 탓인지 봄꽃이 서둘러 피었다.

햇빛을 잘 받는 쪽으로 고개를 내민 개나리, 벚꽃, 목련이 동시에 화들짝 놀랐나 보다.

벌써 만개를 했다.

무심코 바람이나 쐬자며 자동차를 타고 나왔는데 뜻하지 않게 꽃구경을 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는데 봄이 왔다.

봄은 사람보다 꽃들에게 먼저 찾아오나 보다.

나름대로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봄꽃 앞에 서니까 내가 참 단단하게 굳은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된다.

꽃을 보며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푸시시 녹아내리는 걸 느낀다.

그만큼 내가 굳어있었다는 증거다.

이파리가 돋아나려는지 줄기 따라 연초록색 띠를 머금은 게 보인다.

또 한 번 마음속에서 무언가 녹아내린다.

역시 내가 굳어 있었다.




목련이 피는 걸 보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어디에 꼭 들러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목련은 4월의 꽃인데 일찍 핀 목련 때문에 나의 계획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서둘러 계획을 고쳤다.

목련이 피는 때에 맞춰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이다.

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도 목련이 피었을 때였다.

아마 그때가 4월 둘째 주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연구소의 인터넷 방송국에서 영상 편집 일을 하고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 중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자고 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중남미문화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궁금해하며 카메라를 들고 찾아왔었다.

고양 향교 옆에 언덕을 배경으로 하여 아담한 건물이 두 채 있었는데 그 사이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게 첫인상이었다.




한일월드컵 준비가 한창이던 2002년 봄이었다.

전화로 먼저 인터뷰 요청을 하였고 예약한 시간에 도착했다.

와우!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조각공원까지 환상적이었다.

정부에서 계획해서 만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개인이 이 일을 이루었다고 했다.

가난했던 시절에 중남미 지역에서 대사관으로 사역했던 이복형 대사님과 홍갑표 사모님의 작품이었다.

그 두 분의 삶과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듣고 나자 그곳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그 후로 20년이 넘게 줄기차게 그곳을 찾는다.

특별히 해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그곳이 생각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만난 어느 노부부도 6학년 3반 때부터 해마다 그곳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것도 목련이 필 때에 맞춰서 찾아온다고 했다.

역시 사람의 느낌은 통하는 데가 있다.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곳이 바로 중남미문화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중남미문화원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곳에 가면 홍갑표 원장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풀 뽑는 할머니이신 줄 알았다.

검은 옷에 쪽지 머리의 할머니.

그분이 먼저 반갑다며 말을 걸어주셨다.

당신이 이곳을 만들었다면서 매일 이렇게 풀을 뽑으며 가꾸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첫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원장님은 나에게 중남미문화원 홍보대사라고 불러주신다.

그 직책에 맞게 나도 주변사람들에게 부지런히 그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분은 구순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당신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중남미문화원과 함께 꿈을 꾸고 함께 행복하자고 하신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문화적인 선진국이 되는 것을 꿈꾸고 계신다.

언젠가 우리의 젊은이들이 예술적인 끼를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꿈꾸고 계신다.

나도 중남미문화원과 함께 그런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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