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Mar 28. 2023

오늘도 나는 나에게 불어올 바람을 맞을 것이다


어제는 바람이 좀 불더니만 오늘은 바람이 잠잠하다.

어제는 바람이 불어서인지 하늘이 파랬다.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 몽골에서 날아온 황사가 바람에 휩쓸려 갔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바람이 잠잠해서인지 하늘이 흐리다.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 몽골에서 날아온 황사가 휩쓸려 가지 않고 내 머리 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바람이 불어서 이 시커먼 황사를 동해 바다 너머로 휩쓸어 가 버렸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어서 멀리 있는 비구름도 좀 데려왔으면 좋겠다.

요즘 매일 산림청과 행정안전부에서 나에게 문자를 보내주고 있다.

‘띵동’ 소리에 반갑게 핸드폰을 들었는데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으니 불조심하라는 문자이다.

국민학생 때는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불조심!’ 구호를 외쳤는데 요즘은 핸드폰이 대신 외쳐대고 있다.

이제는 그만 듣고 싶다.

바람이 비구름을 좀 데려왔으면 좋겠다.




나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제주도에서 컸다.

한라산이 화산 폭발할 때 화산재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그것들이 땅에서 굳어져서 작은 돌들이 되었다.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구멍 뻥뻥 뚫린 현무암이다.

화산재가 얼마나 땅을 덮어버렸는지 제주도는 전체가 돌조각투성이다.

바다에서 한가운데 1,950미터나 되는 한라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공기의 흐름이 달라져서 자연스레 바람이 생긴다.

산을 타고 올라간 따뜻한 공기가 하늘 높은 곳에서 차가운 공기로 변하면서 바람이 된다.

그래서 제주도는 언제 바람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

따뜻할 줄 알고 제주도로 여행갔던 사람들이 찬바람 실컷 맞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 바람을 따라 바다로 나간 남자들이 많았고, 바람을 따라 꿈꾸는 세상으로 나간 남자들도 많았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한 것도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다.




몇 년 전에 거센 바람이 우리 동네를 흔들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창문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진 아파트들도 많았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지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기도 했다.

바람 한 번 불어간 것에 온 동네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아침 출근을 서두르던 젊은 사람이 바람에 쓰러지는 나무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나도 종종 지나다니는 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때처럼 바람이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이면 습관적으로 눈을 들어 내 머리 위에 있는 나무를 살핀다.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도 바람 한 번 불면 순식간에 망가져 버릴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자신의 튼튼함을 자랑한답시고 바람 앞으로 돌진하는 것만큼 무모한 짓은 없다.

바람은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재빨리 숨고 피해야 할 상대이다.

제발 이 바람이 나를 피해 가기를 두 손 모아 빌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처지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바람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게 또한 우리의 삶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스물세 살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화상이라는 시를 썼다.

그 시에 보면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노래하였다.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시간이 인생의 80%였다니까 깨어 있는 동안에는 늘 바람을 맞으며 살았다는 말이다.

때로는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바람도 맞았을 테고, 겨울바람처럼 아프고 매서운 바람도 맞았을 것이다.

여름바람처럼 시원한 바람도 맛보고 가을바람처럼 서늘한 바람도 맛보았을 것이다.

이런 바람 저런 바람을 맞으면서 ‘나’라고 하는 인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바람이 이런 것을 가져다주고 저 바람이 저런 것을 가져다주어서 ‘나’라고 하는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불어올 바람을 맞을 것이다.

그 바람이 좋은 것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남미문화원과 함께 꿈을 꾸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