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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7. 2023

지친 날에 뜻하지 않게 성공을 생각해 보았다


밖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고 집으로 돌아온 날에는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다.

대충 씻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다.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는 마음에 편안하다.

한숨 푹 자면 좋을 텐데 지친 날에는 잠도 잘 안 온다.

습관적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모니터를 켠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들을 검색한다.

기사는 많은데 읽기가 싫어진다.

영화나 한 편 볼까 하는 마음으로 넷플릭스를 방문한다.

마우스로 주르륵 훑어보지만 딱히 볼만한 영화가 없다.

다큐멘터리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틀어놓으면 한 시간 동안 몇 개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귀찮다.

다운받아 놓은 클래식 음악 공연 파일들을 클릭해 본다.

오페라 영상을 틀어놓고 멍하니 쳐다보기도 한다.

책이나 읽을까 해서 밀리의 서재를 들쑤셔 보기도 한다.

몸이 지쳐서인지 마음이 지쳐서인지 읽고 싶은 책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그런 날이 가끔 찾아온다.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한 시간을 보냈다.

또 한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야 하는데 정신이 말똥거린다.

손흥민 선수가 뛰는 축구 경기라도 있으면 좋을 날이다.

해설자들의 말을 들으며 물끄러미 경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풀린다.

그런데 오늘은 축구 경기도 없다.

찬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좀 나을까 싶어서 슬리퍼를 신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밤거리를 돌고 와서인지 조금은 개운해졌다.

밀린 책이라도 읽어보려 하는데 눈이 안 따라간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자책 서비스에 연결하였다.

딱딱한 글들은 들리지도 않을 것 같아 가벼운 글들을 찾았다.

소설? 아니다.

에세이? 그것도 아니다.

시? 그래. 그게 좋겠다.

예전에 읽었겠지만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읽고 듣다 보면 마음에 와닿는 시가 있을 것 같았다.




류시화 시인이 모은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택했다.

스피커로 들리는 성우의 음성을 들으며 나의 눈은 모니터의 글자를 따라갔다.

멍하니 글자들을 쫓아가던 나에게 한 편의 시가 들어왔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이다.

책 읽기 서비스를 중지시키고 다시 한번 눈으로 읽었다.

제목이 던지는 질문을 생각하면서 또 읽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날에 뜻하지 않게 무엇이 성공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집과 값비싼 자동차를 얻는 것을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진과 이름이 신문에 인쇄되는 것을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대면 상대방이 반색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성공의 공통점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에머슨이 말하는 성공은 달랐다.

이것도 성공인가 싶은데 그는 그것이 성공이라고 노래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자주 웃고 있는지.

얼마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깨달았다.

아직 성공하려면 멀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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