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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by 박은석


한국인 최초로 UN 산하 기구의 수장이 된 인물은 故 이종욱 박사이다.

그는 1945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 봉사에 마음을 두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다시 진학했다.

의과대학 재학 중에는 안양에 있는 성 나사로마을에서 나병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에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일본 여성 레이코를 만나 결혼하였다.

그는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공중 보건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남태평양 사모아섬에서 의료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를 ‘아시아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1983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WHO 예방백신국장을 맡았을 때는 ‘소아마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였고 재임 시절 동안 소아마비 발생률을 세계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림으로써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WHO의 결핵 국장이 되었을 때는 결핵 고위험국가의 결핵 퇴치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런 그의 공로가 전 세계인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어 2003년에 제6대 WHO 사무총장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한국인 중에 이종욱 박사만큼 UN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 없었다.

2007년에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UN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종욱 박사는 검소하고 성실하였으며, 매우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1년 중 150일을 출장 시간으로 보냈으며 그가 비행한 거리는 무려 30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WHO 사무총장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1등석 좌석의 혜택을 포기하고 늘 2등석 좌석에 앉았으며 수행원도 단 두 사람만 동행하게 하였다.

“우리가 쓰는 돈에는 가난한 나라의 분담금도 섞여 있다.

그 돈으로 호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05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서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종욱 박사를 선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너무 무리해서였을까?

이종욱 박사는 WHO 사무총장이 된 지 3년 만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과로로 생을 마감하였다.

너무나 위대한 인물의 안타깝고 아쉬운 죽음이었다.

2006년 5월 22일이었다.

이종욱 박사를 소개한 글들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여졌다.

5월 22일이라는 날짜 때문이었다.

그날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날, 나의 양력 생일이다.

내가 생일 축하 인사를 받고 있을 때 이종욱 박사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분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끈이 그분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5월 22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떠나가지만 5월 22일부터는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게 도대체 어떤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보급하겠다고 했던 그의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1/3인 100만 명만 치료제를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노력이 실패했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는 “실패는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입니다.”라고 하였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이유가 생기고 그럴듯한 핑계가 생깁니다.

과연 옳은 일이고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합시다.

옳은 일을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라는 걸 명심합시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유산은 임대주택 한 채와 소형 자동차 한 대가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많은 유산보다 더 큰 것을 무언의 소리로 남겼다.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001.jpg

https://youtu.be/Ogvyn8sPf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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