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은 말 하나가 마음에 깊이 꽂힐 때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말이 있다.
스무 살 때 들은 말인데 30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고 있다.
‘통과의례(通過儀禮)’라는 말이다.
대학 1학년 때 전공과목의 어느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셨다.
그때 교수님의 논문에서 ‘통과의례’라는 말이 나왔다.
처음 대하는 말이었지만 모를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번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 순간에 어떤 의식을 치르는데 그런 의식들이 바로 통과의례이다.
생일에 축하를 주고받는 것이 통과의례이다.
아이가 가방을 메고 처음으로 초등학교 교문을 지나가는 날이 통과의례의 날이다.
남자라면 이십 대에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군복무를 해야 하는 것,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모두가 통과의례이다.
통과의례들을 한 줄로 늘어놓아 보면 삶이 일직선인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자라서 젊음을 누린 후에는 점점 나이 들고 늙고 죽는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누구도 이 과정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단편소설 중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작품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벤자민 버튼은 태어나는 순간에 아주 나이 많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갓 태어난 아기인데 그 몸이 할아버지의 몸처럼 늙은 몸이다.
이 아기인 벤자민은 시간이 지나면서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중년의 모습으로 그리고 청년의 모습,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변한다.
인간의 생애를 역발상으로 생각해 본 작품이지만 이 작품도 결국은 인간의 삶을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지 간에 우리의 두뇌 속에는 인생의 굽이 굽이를 지나갈 때 ‘통과의례’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어떤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길 중간중간에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잠시 고민을 한다.
오직 하나의 길만 선택할 수 있다.
두 길을 다 선택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길인 셈이다.
그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이 바로 통과의례의 시간이다.
하나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잘 통과했다는 기분 좋은 감정이 든다.
당분간은 탄탄대로를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 선택했다는 불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갑자기 앞이 캄캄하게 보일 때면 지나온 통과의례에 대한 후회가 더욱 많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인생의 길은 한 번 지나면 지난 길은 지워져 버린다.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힘껏 뛸 수도 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겨우겨우 기어가다시피 해야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넓이와 높이를 유지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르막길도 나오고 내리막길도 나온다.
오르막길이라고 해서 힘들고 나쁜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편하고 좋은 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등산길의 낙상사고는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쭉 뻗은 길이라고 해서 좋은 길도 아니고 돌고 도는 길이라고 해서 나쁜 길도 아니다.
좋은 산길은 잘 돌아서 가는 길이다.
빨리 갈 수 있다고 해서 좋은 길도 아니고 늦게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해서 나쁜 길도 아니다.
빨리 갔다고 해서 빨리 끝나는 길이 아니고 늦게 간다고 해서 늦어지는 길도 아니다.
인생의 길은 누구나 자신의 보폭에 맞추어 가는 길이다.
그 길을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통과의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