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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10. 2023

검은 천사 메리 시콜(Mary Jane Seacole)


‘검은 나이팅게일’이라 불린 사람이 있다.

‘전장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자메이카 원주민인 어머니와 스코틀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시콜(Mary Jane Seacole, 1805~1881)이다.

메리 시콜처럼 흑인과 백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을 사람들은 물라토(Mulato)라고 불렀다.

메리 시콜의 어머니는 민간의술을 많이 알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을 곧잘 치료해주었다.

메리 시콜은 어머니로부터 자메이카 민간의술을 배웠고 성인이 되어서는 직접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백인 남성과 결혼하였지만 곧 남편과 사별하고 국영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크림전쟁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고 오스만투르크와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사르데냐 등의 연합군이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치른 전쟁이었다.




메리 시콜은 전쟁터야말로 자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메이카에서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간호단에 지원했다.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번번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더 이상 간호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불합격 이유였다.

거짓말이었다.

간호사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영국인 장교들은 식민지 출신의 혼혈인인 메리 시콜이 백인을 돌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병사들을 죽일지언정 물라토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더럽고 치사하다며 침을 뱉고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메리 시콜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비요을 지불해서 배를 구했고 그 배를 타서 크림반도로 갔다.

당시 크림반도에는 나이팅게일 간호소가 유명했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 간호소에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메리 시콜은 더 독한 마음을 가졌다.

후방에 위치한 나이팅게일 간호소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최전방으로 가면 분명히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과연 최전방에서는 모든 것이 열악하였다.

간호사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병사보다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병사들이 더 많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였다.

자신의 의료지식과 임상 경험을 총동원하여 부상당한 병사들을 돌보았다.

그녀로부터 응급치료를 받고 상태가 나아진 병사들은 후방에 있는 나이팅게일 간호소로 후송되었다.

하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메리 시콜은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그들 곁에서 마지막 시간을 지켜주었다.

젊은 병사들은 메리 시콜에게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메리 시콜이 전장의 어머니가 된 사연이다.




전쟁이 끝난 후 메리 시콜은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나이팅게일이 국빈 대접을 받은 것에 비하면 너무 가혹한 차별이었다.

그녀가 외롭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참전 용사들이 발 벗고 나서서 그녀의 업적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터키에서 그녀에게 훈장을 수여해주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2005년의 어느 날, 영국의 한 액자가게에서 우연히 액자의 뒷면 종이로 사용되던 초상화 한 장이 발견되었다.

3개의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있는 혼혈인 할머니의 초상화였다.

도대체 이 인물이 누구인지 찾아보았더니 메리 시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잊힌 이름이었다.

크림전쟁의 영웅은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이팅게일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스스로 가난과 희생을 택한 ‘검은 천사’ 메리 시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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