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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7. 2023

사람과 사람 사이는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마치 산봉우리와 산봉우리의 사이 같다.

앞산의 봉우리와 뒷산의 봉우리는 서로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떨어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서로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떨어져 있다.

수만의 군중이 한 장소에 모여 있다고 하더라도 모여 있는 군중들 사이가 있다.

틈이 있다.

그 틈을 딱 붙여버리면 숨을 쉴 수가 없다.

살 수가 없다.

틈이 있어야 숨을 쉴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부부를 일심동체라며 함께 붙어 있는 존재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라고 할지라도 완전히 하나가 되는 부부는 없다.

한날한시에 떠난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고집하면 탈이 난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서로 다른데 하나로 합치려고 하니까 뭉개지고 깨지게 된다.

산봉우리는 하나로 합치지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 서 있을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산봉우리와 산봉우리의 사이 같다.

앞산의 봉우리와 뒷산의 봉우리가 서로 별개인 것 같지만 또 자세히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잘 됐다 싶어서 눈치 볼 것 없이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아무라도 붙들어서 그가 아는 사람과 내가 아는 사람, 그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과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이어가다 보면 오래지 않아 그와 내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 세계 80억 명의 인구 중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그렇지만 사람들 사이의 인맥지도를 그어 보면 전 세계 80억 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관계가 없다고 떨어지려고 하면 안 된다.

산봉우리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 등 돌리지 않는다.

나무줄기와 땅줄기를 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산봉우리와 산봉우리의 사이 같다.

앞산의 봉우리와 뒷산의 봉우리가 서로 마주하지만 같은 소리를 낸다.

이편저편 다른 편인 것 같지만 소리를 들어 보면 서로 같은 편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봉우리에 올라가서 “야호” 소리 지르면 저 봉우리에서도 “야호”하고 화답을 한다.

같은 편이라는 증거가 확실하다.

크기도 다르고 높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그 봉우리들이 다 같은 소리를 낸다.

태백산도 그렇고 설악산도 그렇고 도봉산도 그렇고 북한산도 그렇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안녕하냐는 말, 잘 지내냐는 말,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아프지 말라는 말, 사랑한다는 말, 다시 만나자는 말들이다.

“안녕”하고 말을 하면 “안녕” 하는 말이 돌아온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말이 들리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말이 들린다.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면 산에 간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고 싶지 않아서 산으로 간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떠나서 나만의 생각, 나만의 말을 하고 싶어서 산으로 간다.

산속에 들어가면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좋다.

혹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이이니 눈치 볼 것 없어서 좋다.

그러나 산속에 들어갔을 때, 정말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빨리 그 산에서 나오고 싶어진다.

사람과 떨어지고 싶어서 산에 가고 사람을 피해서 산에 가지만 막상 산에 가면 사람과 같이 있고 싶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산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다 내가 아는 사람 같고 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 같다.

산에서 인사하면 내 인사를 안 받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다 내 편처럼 여겨지는 것은 산과 사람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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