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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5. 2023

나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거대한 코끼리가 쇠사슬 한 줄에 매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 생각에는 코끼리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그 쇠사슬을 끊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코끼리는 쇠사슬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쇠사슬은 끊을 수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코끼리를 보면서 내가 가진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코끼리는 쇠사슬에 매이기만 하면 희망도 노력도 읽어버리는 것 같다.

사실 코끼리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원인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코끼리를 쇠사슬에 매어놓고 키웠기 때문이다.

어니 코끼리도 쇠사슬을 끊고 자유롭게 활보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몇 번 시도한 끝에 코끼리는 스스로 ‘나는 쇠사슬을 끊을 수 없어.’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졌으면서도 여전히 쇠사슬을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코끼리에게서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니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머리는 굉장히 똑똑해서 새로운 정보를 잘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머리는 새로운 정보를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번 머릿속에 주입된 정보는 그게 사실인지 거짓인지 간에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

행동에 어떤 패턴이 생기면 여간해서는 그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잘 아는 곳에 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다녔던 길을 택한다.

여간해서는 새로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한 번 경로가 정해지면 그 경로를 의존하게 된다.

비록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경로를 벗어나 못한다.

스탠퍼드대학교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는 이런 현상을 ‘경로 의존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경로 의존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사람은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것을 참고 지낸다.

오히려 그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밥상에 음식을 차릴 때 밥그릇은 왼쪽에 놓고 그 오른쪽에 국그릇을 놓으라고 하셨다.

그다음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밥상차림이라고 하셨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차려진 밥상에 앉으면 식사하기가 참 편하다.

밥을 뜨고 국을 뜨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어서 반찬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왼손잡이의 입장에서도 그럴까?

왼손잡이인 사람에게는 그런 밥상차림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왼손잡이의 입장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오른쪽에 놓이는 게 아니라 왼쪽에 놓이는 게 훨씬 편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조건 밥, 국, 숟가락, 젓가락 순으로 놓아야 했다.

그게 맞고 편하다고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면서 로마는 정복지에 길을 놓았다.

그런데 그 길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만들었다.

마차가 대중교통수단이 되었던 시절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마차의 시대는 지났고 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면 자동차에 맞게 크고 넓게 길을 닦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도로의 폭은 여전히 말 두 마리의 엉덩이가 맞닿을 정도이다.

기차의 레일도 마차의 폭에 맞춰 있다.

우리가 다니는 모든 길의 폭은 말 두 마리의 엉덩이가 그 기준이 되어버렸다.

말 두 마리의 엉덩이가 2천 년이 넘도록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내 일상생활에서 여러 요소들이 말 두 마리의 엉덩이 사이즈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나도 별것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나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나의 경로 의존성으로 삼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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