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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14. 2023

길이 나를 이끌어간다

   

운전을 하고 가다 보면 유독 차량이 뒤얽혀 길이 막히는 구간이 있다.

앞에서 무슨 사고가 났나 싶기도 하고 공사를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시속 30Km, 20Km, 10Km로 속도는 점점 더 떨어진다.

초조하게 시계를 쳐다보며 아무도 들리지 않는 차 안에서 혼자 투덜거린다.

그러다가 보면 갑자기 앞이 확 트인다.

도대체 왜 차량이 밀렸는지 도통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 자리를 지나간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알지 못하겠다.

이렇게 앞길이 활짝 열렸는데 왜 그곳만 그렇게 막혀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그 자리를 통과하기 직전에 사고 수습이 끝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이 한 번으로 그쳤다면 그런 생각도 할 만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

신호등도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인데 막혔다 뚫렸다를 반복한다.

보이지 않는 어떤 장애물이 있어서 그 구간을 지날 때마다 자동차들을 붙잡아두는 것 같다.




상습정체구간이라는 팻말이 보이기라도 하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어쨌든 빨리 가기는 글렀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어떤 날은 상습정체구간이라고 하는 그 팻말이 무색하게 전혀 정체되지 않고 쌩하니 달려간다.

자동차들이 다들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나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손이 다른 자동차들을 다 치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타고 길을 가는 것도 그날그날따라 다르다.

아무리 운전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길이 막히면 별 수 없다.

그랑프리 대회를 석권한 카레이서도 막힌 길에서는 달릴 수가 없다.

앞 차량의 뒤꽁무니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길길거리며 갈 수밖에 없다.

반면에 아무리 초보운전자라고 할지라도 차량 한 대 없는 길을 갈 때면 자신감이 생긴다.

콧노래를 부르며 한껏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운전을 잘하는 사람 같다.




약속한 장소에 약속한 시간보다 늦으면 먼저 온 사람들이 나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내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길이 막혀서 늦었다고 한다.

내 운전 실력이 서툴러서 늦었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한다.

어쩌다가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면 나보다 늦게 오는 사람들이 또 나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냐고 말이다.

그때도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길이 하나도 안 막혀서 일찍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내 운전실력이 좋아서 빨리 왔다는 말은 안 한다.

내 탓이 아니다.

나의 능력 때문도 아니고 나의 실력 때문도 아니다.

내가 온 길이 내 속도를 조절해 주었다.

나는 단지 내 앞에 놓인 길을 갔을 뿐이다.

천천히 가라고 하면 천천히 갔고 빨리 갈 수 있다고 하면 빨리 갔다.

길이 시키는 대로 갔기 때문에 사고 나지 않았고 길이 속도를 조절해 주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내가 매일 가고 있는 내 인생의 길도 자동차 타고 가는 길과 다르지 않다.

옆길 가는 차가 빨리 간다고 해서 내가 빨리 갈 수 없듯이 남들이 빨리 간다고 해서 내 인생도 빨리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길을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

그 흐름에 맞춰서 때로는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천천히 걸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천천히 가야 하는 길이면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흥에 취해서 가면 된다.

빨리 가는 길이면 정신 바짝 차리고 앞만 보고 가면 된다.

때로는 빨리, 때로는 천천히 내 인생의 길이 나를 안내하는 대로 가면 된다.

다른 사람의 길은 그 사람의 길이 안내할 것이다.

나는 내 길이 안내하는 대로 가면 된다.

지금껏 온 길이 늦은 길이 아니다.

빠른 길도 아니다.

딱 적당한 길이다.

딱 맞는 길이다.

앞으로 갈 길도 그럴 것이다.

내 수준에 딱 맞는 길이다.

그 길이 나를 딱 맞게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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