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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5. 2020

알다가도 모를 나의 LG트윈스

나는 야구경기를 좋아한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생겼을 때부터 줄곧 한 팀만 응원했다.

내가 왜 그 팀을 좋아했는지 딱히 설명할 수가 없다. 내 고향과 관련이 있는 팀도 아니다.

아마 텔레비전 방송사를 끼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MBC청룡. 지금은 LG트윈스로 이름을 바꿨다.

쌍둥이가 방망이를 휘두르면 안타를 칠 확률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의 이름이 죄다 동물이나 마법사 이름을 딴 것에 비하면 팀 이름부터가 참 인간스럽다.

이름 때문인지 맹수들과 용, 마법사가 득실대는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

살아남으려고 해서 그런지 LG는 사랑이라고 한다. 아낌없이 준다는 뜻이겠다.

상대 신입 투수의 기를 살려주고 기록에도 도움을 준다.




야구팬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팀이라고 하는데 연고지를 서울로 정했기 때문이란다.

서울을 연고지로 한 다른 두 팀이 더 있는데 그 팀들은 왜 LG보다 팬이 적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애매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팬이 많으면 뭐하나? 프로의 세계는 성적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 옛날 응답하라 1994 후 아직까지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저 그런 팀이라고 할만하다.


아예 전설적인 꼴찌를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팀은 추억이라도 강인하게 남는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구단을 갈아타는 팀들은 아이스크림 회사였다느니 라면 회사였다느니 하면서 이야깃거리도 남긴다.

하지만 LG는 구단도 탄탄하고 모기업의 CEO들로부터 전폭적인 관심을 받는데 별로 내세울 게 없다.




이 팀은 뭐 좀 하나 싶으면 주르륵 미끄러진다. 매년 반복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 Down Team Down)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10개 구단 중에서 딱 7등 정도 할 거라면서 LG라는 이름 대신 칠쥐(7G)로 부르는 상대편 팬들도 상당히 많다.

이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동안 이 팀이 그런 행보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인정한다.


잠실 운동장이 넓으니까 공을 잘 치는 선수보다 달리기를 잘하는 선수가 유리하다며 ‘신바람 야구’를 표방했었는데 신바람은 통 불지를 않는다.

뭐. 일단 선수가 살아 나가야 하는데 죄다 아웃이다.


야구는 투수게임이라고도 하는데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얻어내야 이기는데 허구 헌 날 엇박자로 돌아간다. 투수가 잘 던지면 타자가 못 치는 식이다.




잘 나가다가 경기 후반에 역전당하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시는 이 팀을 응원하나 봐라. 10점 먹고 져버려라.” 저주를 한다.

그러면 이상하게 그때부터 잘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나온 후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쓰고 ‘의미치료(Logotherapy)’를 주창한 빅터 프랭클은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때 역설지향(paradoxical intention)을 해 보라고 한다.

어떤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아예 될 대로 되라는 듯이 격하게 반응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LG트윈스를 향해서 “져라 져.” 외치는 것과 같다.

정말 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기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진다.

그렇게 마음으로 끙끙 앓지 말고 차라리 터뜨려버리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참 신기하게도 내가 역설지향으로 저주를 하면 우리 팀이 이긴다.

하, 이걸 어쩐다? 나는 저주나 하는 나쁜 사람이 되기는 싫은데.

정말 알다가도 모를 팀이다.

나의 LG트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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