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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3. 2020

결혼기념일

우리 부부의 스물한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이팔청춘의 파릇파릇했던 스물여덟 살 칠월의 첫 토요일에 식을 올리고 지금껏 한 집안에서 잘 살고 있다. 그동안 기적처럼 딸을 얻고 아들을 얻어 둘이 넷이 되는 기적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해마다 맞이하는 기념일이지만 스물한 해 전의 이 날만한 설렘과 흥분과 감동은 없다. 스물한 해 전에는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날을 받아놓고는 날마다 달력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하루하루 시간을 지워갔었다. 신혼집에 먼저 들어가 혼자 집을 지키며 보낸 밤에는 곧 둘이 같이 살게 될 날들을 꿈꾸며 단잠을 자곤 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지나 어느덧 결혼식장의 종을 치고 당차게 결혼에 들어섰다.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삶이다. 어떻게 결혼식을 올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결혼을 이어가느냐가 중요한 거다. 그렇기에 결혼을 이어가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하지만 청춘의 때에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그냥 둘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인생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에 저돌적이었던 것이다. 무너지고 넘어지면서 하나씩 하나씩 배워갔다.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이해해갔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시간들을 넘어올 수 있었다. 지금 우리 부분에게 연애시절의 알콩달콩한 흥분은 재현되지 않지만 오래된 옷처럼 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말이 편해지고 행동이 편해지고 마음도 편해졌다. 그리고 그 편함은 배우자가 나의 일부가 된 것처럼 여기기에 충분하다.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한다. 한 몸과 한 마음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디 이것이 말처럼 쉬운가? 절대 그렇지 않다. 물리적으로 엄연히 두 사람이고 두 마음인데 어떻게 한 사람,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해될 때까지 연구해보고 찾아보아야 한다. 내 안에 너가 있는지, 그리고 너 안에 내가 있는지. 그러니까 결혼은 나 안에서 너를 발견하고 너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가만히 집중해서 찾아보면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나에게서 너의 말이 나오고, 나의 행동에서 너의 행동이 나타난다. 그리고 또 내 생각 속에 너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너 또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말투도 닮아가고, 입맛도 닮아가고, 성격도 얼굴도 인생 가치관도 닮아간다.     


그래서 결혼이 오래되면 사람들로부터 오누이 같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아니에요.” 하면서 손사래도 쳐보지만 그 말이 기분 좋게 여겨진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찾은 것 같고 또 너를 찾은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까지 나를 찾지 못하고 너를 발견하지 못하면 결혼을 너무 허비해버린 것이다. 결혼(結婚)의 글자 ‘결’은 ‘끈을 묶어서 맺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열매를 맺는다’, ‘완성한다’는 의미도 있다. 배우자의 가족과 하나로 묶이는 것이 결혼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배우자와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이 결혼이며, 배우자와 함께 인격적인 완성을 이루는 것이 결혼이다. 가족으로 묶이는 것은 간단한 예식과 혼인신고만 하면 된다. 하지만 열매를 맺고, 인격적인 완성을 이루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해마다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은 우리의 진도가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는 중간 점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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