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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6. 2020

초딩 아들의 아이폰이 깨졌다

초딩인 아들의 아이폰이 깨졌다. 구입한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새로 구입해주면서 얼마나 신신당부를 했는데... “초딩에게 아이폰 사주는 부모가 얼마나 되겠니? 이번에 잃어버리면 무조건 중고폰이다.” 엄포를 놓았었다. 그런데 아들은 대답뿐이었다. 집에서도 몇 번이나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다가 액정 깨지면 수리비 엄청 많이 나온다고 잔소리를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휴대폰은 집에 오늘 길에서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녀석에게 야단치는 것 대신에 새롭게 아이폰을 장만해줬으니 아빠로서 대단한 선심을 베푼 것 아닌가? 어제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들이 자기도 몰랐다면서 아이폰이 깨져 있었단다. 떨어뜨린 적도 없다는데, 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네 군데 모서리마다 찍힌 자국이 있고 액정은 좌악 금이 가 있었다.


순간 혈압이 파악 올라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들은 정말 몰랐다고만 하며 닭똥 같은 눈물도 몇 방울 흘렸다. 가족 사이에 잘잘못을 따져서 좋은 건 하나도 없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아닌가? 액정이 깨진 상태로 사용하는 이들도 많지만 혹여나 유리가루에 어린 아들이 손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일. 거금을 들여 수리하기로 했다. 저렴하게 중국 쇼핑몰에서 부품을 구입하여 직접 수리하려고도 했다. 전에도 몇 번 작업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사용하는 것은 적당히 수리해서 써도 괜찮은데 이것은 아들이 사용하는 거다. 돈은 좀 많이 들지만 기왕이면 깔끔하고 티 안 나게 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전문가에게 맡기자, 그리고 정품으로. 하지만 공식센터는 너무 비싸니까 사설센터로.’ 이 정도로 타협하고 수리센터로 갔다.


수리센터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자잘한 부품들을 빼고 끼는 작업이기에 각종 드라이버와 공구들이 즐비하였다. 누군가 맡겨놓은 고장난 제품들과 수리가 끝나서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각각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수리하는 동안 나가 있으려고 했더니 사장님은 자신 있다는 듯이 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신뢰감이 급상승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사장님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 같았는데 그 분의 시선은 지금 고치고 있는 아이폰에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나사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다루고 손놀림도 매우 정교했으며 작업 중간 중간에 연신 먼지제거기로 먼지를 털어내기도 하였다. 굉장히 꼼꼼하게 일하신다고 말씀드리니 그렇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하다면서 더욱 꼼꼼히 살펴주었다.


영어에서 꼼꼼함을 의미하는 ‘meticulousness’라는 말에는 ‘두려움, 소심함’이라는 뜻도 들어 있다.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조심하다 보니 일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소심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조심스럽게 살피고 또 살펴서 일을 하고 보니 결국에는 어느 한 군데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이나 ‘소심함’이라는 부정적인 표현 대신에 ‘꼼꼼함’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을 이 단어에 덧씌웠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나래를 막 펴고 있는데 “다 되었습니다.”라는 말이 들려 흠칫 놀랐다. 아이폰을 받아들고 이래저래 돌려보았는데 수리한 것인지 오리지널제품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완벽했다. 전문가에게 맡기기를 참 잘했다. 아들이 쓸 휴대폰 아닌가? 집에 가서 내밀었을 때 아들의 입이 좌악 찢어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데 아들아 이번에는 제발 좀 꼼꼼하게 다뤄주면 좋겠다. 아빠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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