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상기된 얼굴.
손을 가까이 대기만 해도 찔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다.
몸에서 무엇인가 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아' 하고 크게 벌린 입 안에 눈으로만 봐도 흔들리는 이빨 하나.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 입 안으로 하얀 실을 집어넣고 조심스레 한 번 또 한 번 둘러 묶는다.
이빨을 뽑아야 하는 딸아이보다 ‘실수하면 안 되는데’ 하는 아빠의 마음이 더 긴장된다.
저절로 두 손을 깍지 끼고 쫑알쫑알 기도까지 하는 딸아이의 소리를 잠깐 멈추게 하고,
“하나 둘 셋!” 실을 잡아당긴다.
순간적인 속도가 중요하다.
살살 잡아당기면 오히려 통증만 느낄 뿐 이빨이란 놈이 전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찰나의 속도로 잡아당기니, ‘아!’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실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이빨 하나가 뿌리를 드러내고 입 밖으로 나온다.
“뽑았어? 뽑았어?”
거듭 거듭 물어보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마치 큰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인 양 아빠의 두 어깨는 으쓱해진다.
“그것 봐, 하나도 안 아픈데 괜히 무서워하고는...”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마음속에 메아리치는 소리가 있다.
“너도 이빨 뽑을 때 무서워했잖아?”
그래 그랬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빨을 뽑을 때마다 동지섣달 늦은 밤만큼 내 마음도 캄캄했었다.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아니면 다독이려는 듯 아버지는 별 것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주었었다.
그리고 내가 딸에게 했던 것처럼
“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힘껏 실을 잡아당겼었다.
그렇게 이빨을 하나씩 뽑으면서 나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딸아이의 이빨을 뽑는 아빠가 되기까지 하였다.
이제 내 이빨을 뽑으려고 벌린 입 속으로 실을 묶어줄 아버지는 곁에 안 계시다.
하지만 딸아이의 이빨을 뽑을 때마다 아버지는 내 마음에 찾아오고 나에게 흐믓한 웃음을 웃어주신다.
“다 컸네.” 하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