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Sep 11. 2020

딸아이의 이빨을 뽑으며

잔뜩 상기된 얼굴.

손을 가까이 대기만 해도 찔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다.

몸에서 무엇인가 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아' 하고 크게 벌린 입 안에 눈으로만 봐도 흔들리는 이빨 하나.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 입 안으로 하얀 실을 집어넣고 조심스레 한 번 또 한 번 둘러 묶는다.

이빨을 뽑아야 하는 딸아이보다 ‘실수하면 안 되는데’ 하는 아빠의 마음이 더 긴장된다.     


저절로 두 손을 깍지 끼고 쫑알쫑알 기도까지 하는 딸아이의 소리를 잠깐 멈추게 하고,

“하나 둘 셋!” 실을 잡아당긴다.

순간적인 속도가 중요하다.

살살 잡아당기면 오히려 통증만 느낄 뿐 이빨이란 놈이 전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찰나의 속도로 잡아당기니, ‘아!’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실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이빨 하나가 뿌리를 드러내고 입 밖으로 나온다.     


“뽑았어? 뽑았어?”

거듭 거듭 물어보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마치 큰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인 양 아빠의 두 어깨는 으쓱해진다.

“그것 봐, 하나도 안 아픈데 괜히 무서워하고는...”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마음속에 메아리치는 소리가 있다.

“너도 이빨 뽑을 때 무서워했잖아?”     


그래 그랬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빨을 뽑을 때마다 동지섣달 늦은 밤만큼 내 마음도 캄캄했었다.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아니면 다독이려는 듯 아버지는 별 것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주었었다.     


그리고 내가 딸에게 했던 것처럼

“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힘껏 실을 잡아당겼었다.     


그렇게 이빨을 하나씩 뽑으면서 나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딸아이의 이빨을 뽑는 아빠가 되기까지 하였다.     


이제 내 이빨을 뽑으려고 벌린 입 속으로 실을 묶어줄 아버지는 곁에 안 계시다.

하지만 딸아이의 이빨을 뽑을 때마다 아버지는 내 마음에 찾아오고 나에게 흐믓한 웃음을 웃어주신다.

“다 컸네.” 하시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자화상(自畵像)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