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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남자는 말야
그곳에 가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by
박은석
Apr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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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일이 있어서 경상도 일대를 하루에 부지런히 돌아보았다.
아침 여섯 시가 조금 지서 출발했다.
첫 도착지는 김천이었고 이어서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 마신 후에 갈 길이 바쁘다며 일어섰다.
다시 대구에 들렀다가 안동과 봉화, 영주를 거쳐서 분당으로 돌아왔다.
김천과 대구와 부산은 이전에도 갔던 적이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안동과 봉화, 영주는 이번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이전에 갔던 적이 있는 도시도, 또 이번에 처음 가 보았던 도시도 낯설지 않다.
이미 오래전에 이 도시들과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도시의 이름조차 친근하게 다가온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이정표에 도시 이름이 쓰인 것을 보는 순간 내 생각은 스무 살 때로 날아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만났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대학 1학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이다.
그때 우리를 한 방에 모이게 해 놓고서는 선배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게 했다.
어디에서 온 누구이며 나이는 몇 살이라는 등의 별 중요치도 않은 정보들을 공개했다.
그런데 그 시답잖은 정보가 그 친구들을 생각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정보가 되고 말았다.
“우리 엄마가 예~ 대학에 가면은 예~”라고 말을 열었던 인숙이는 대구가 고향이었다.
수정구에서 올라왔다는 수정이는 부산 사람이었다.
수정이 옆에 수경이도 부산이 고향이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던 진아는 영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선배 중의 하나가 자기는 점촌 사람이라며 영주에서 가까우며 문경새재가 고향 근처에 있다고 했었다.
그때 나는 문경새재가 점촌과 영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교회에 갔더니 안동에서 올라온 여자애도 하나 있었다.
내가 잘 알던 사람 하나는 직장 때문에 김천으로 이사 갔다.
봉화에는 잊히지 않는 분이 살았었다.
내가 아는 이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지냈던 생활 반경은 고작해야 십여 킬로미터 내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로 생각한다.
대구 사람을 이야기할 때면 대구 사람은 다 인숙이나 영호와 같다고 생각하고 부산 사람을 이야기할 때면 부산 사람은 수정이나 수경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영주 땅을 밟았을 때 진아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조건반사적으로 ‘영주=진아’라는 공식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내가 그 지역 출신의 사람을 만난 것은 고작 한두 명밖에 없는데 나는 마치 내가 그 지역 사람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떠벌인다.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아마 나를 떠올리면서 ‘제주도 사람들은 다들 은석이와 같을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와 조금 더 친분을 쌓은 이들은 “내가 제주도 사람을 잘 아는데...”라면서 운을 뗄 것이다.
우습기도 하지만 가슴 철렁거리기도 한다.
내가 제주도 사람의 대표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암만 열심히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만난 사람들은 제주도 사람을 생각할 때 나를 떠올릴 것이다.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간에 내가 제주도 사람의 대표가 되어 버렸다.
나도 제주도를 잘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나를 제주도의 대표로 여긴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주도의 말이고, 내 행동 하나하나가 제주도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박씨 성을 가졌으니까 나를 보면서 “박씨 가문은 그래.”라고 생각을 한다.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하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그런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제주도 사람들은 저렇게도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해 버린다.
이러니, 내가 말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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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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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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