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이 너무 지칠 때가 있다.
밖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모니터를 틀어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럴 때는 앙드레 류의 공연 영상을 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보고 있으면 마음이 녹아든다.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받는 것 같고 음악을 통해서 내 마음이 마사지를 받는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든다.
이 양반은 지휘자인지 바이올린 연주자인지 아니면 쇼맨십이 뛰어난 탤런트인지 분간이 안 간다.
돈이 많은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오케스트라단을 데리고 다니면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펼친다.
그와 호흡을 맞춘 연주자들도 모두 훌륭하다.
청중의 마음을 홀딱 뺏는 데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을 지켜보는 이들은 활짝 웃기도 하고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앙드레 류의 여러 공연 영상 중에서도 내가 즐겨 보는 영상은 2014년에 발매된 Love in Vence이다.
한바탕 축제의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앙드레 류가 오페라 아리아 한 곡을 소개한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아는 노래이다.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라는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이다.
어느 부자가 갑작스레 죽었는데 그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서 일가친지들이 모여서 유언장을 찾는 내용이다.
기적처럼 젊은 청년인 리누치오가 유언장을 발견하였는데 거기에는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 청년은 자신이 사랑하는 라우레타의 아버지인 잔니 스키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린다.
시골뜨기인 잔니 스키키를 달갑지 않게 여긴 리누치오의 부모는 젊은 남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잔니 스키키의 딸인 라우레타는 리누치오와의 결혼이 무산된다면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이 대목에서 라우레타의 아리아가 나온다.
“오 미오 바비노 까로(O mio babbino caro)”라고 하면서 시작하는 이 아리아는 구구절절한 내용이다.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그이가 좋아요.
그이는 멋져요.
저는 이제 포르타 로사 성문에 가서 결혼반지를 살 거예요.
정말이에요, 정말로 거기에 가고 싶어요! 만약 제가 그이를 헛되이 사랑하고 있다면 폰테 벡키오 다리에 가서 아르노강에 뛰어들고 말 거예요.
저는 난 초조하고 괴로워요.
오 하나님, 죽고 싶어요.
아빠, 제발, 제발.”
앙드레 류의 공연에서는 이 곡을 당시 아홉 살이었던 아미라 빌리하겐이라는 네덜란드 소녀가 부른다.
어린아이가 오페라 아리아를 이렇게 황홀하게 부를 줄은 몰랐다.
영상을 보면 많은 관중들이 눈물을 흘린다.
여성들은 아마 자신이 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을 테고 나이 많은 남성들은 아마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던 때를 기억했을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내 아내를 생각하고 장인어른을 생각한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았을 텐데 내 아내는 장인어른께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장인어른은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뭘 믿고 귀하게 키운 딸내미를 보내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이다.
하늘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나도 내 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과연 어떤 놈이 내 딸을 데려갈 것인지 궁금하다.
분명 늑대 같은 놈이 하나 나타날 것 같은데 그런 놈에게 내 딸을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딸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아마 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내가 딸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부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다.
아빠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고작 그것이다.
++아미라 빌리하겐의 "O Mio Babbino Caro"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