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구슬치기를 많이 좋아했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손톱에 구슬을 올려놓고 그놈을 엄지손가락으로 고정시킨 다음 엄지손가락을 떼어내면서 가운뎃손가락으로 구슬을 던진다.
그러면 구슬이 촤르르 날아가서 내가 목표로 했던 구슬을 정확히 맞춘다.
구슬치기의 묘미이다.
정확한 거리와 각도를 맞춰서 구슬을 날려 보내야 한다.
나는 그 일을 정말 잘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구슬이 수북이 쌓였었다.
구슬치기 외에도 남자아이들은 딱지치기와 자치기 같은 놀이를 했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이나 공기놀이를 즐겼다.
분명 놀이일 뿐인데 아이들은 그 놀이를 일생일대의 큰일인 것처럼 여겼다.
목숨을 걸다시피 놀이에 몰입했다.
그래서 구슬을 많이 딴 아이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고무줄넘기를 잘하는 여자아이는 인기가 많았다.
고무줄넘기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기둥에 고무줄을 걸어놓고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구슬치기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홀로 마당에서 구슬을 굴리며 실력을 키웠다.
다양한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다양한 방향에서 구슬을 굴려보았다.
그런 훈련이 실전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구슬 몇 방울인데 그것들을 따서 가지고 올 때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것을 얻은 것이 아니다.
구슬 몇 알 얻었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구슬을 많이 모으려면 돈 몇 푼 주고 사 오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렸을 적의 나는 돈으로 구슬을 왕창 사는 것보다 내 힘으로 남들과 대등하게 싸워서 구슬을 하나씩 차지하는 것을 더 즐겼다.
푸르스름한 빛깔을 띠는 유리구슬은 지구를 닮았다.
구슬을 많이 얻을수록 지구를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았다.
구슬을 모아놓고 “구슬아, 구슬아.” 주문을 외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세상이 구슬치기처럼 즐거운 일들로 가득 찬 듯 알았다.
내 손을 떠난 구슬이 날아가서 또 하나의 구슬과 마주치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구슬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비밀의 문이 열리고 신기한 마법 세상으로 나를 인도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해가 더해가고 나이가 더해가면서 그 즐거웠던 일이 시시한 일이 되고 말았다.
즐거운 일이 줄어들고 그 대신에 고통스러운 일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는 것 같다.
고통의 파도가 한 번 몰아치는 것도 힘들 텐데, 그 견디기 힘든 파도가 수십, 수백, 수천 번 몰려온다.
파도를 바라보기가 두렵다.
저 무시무시한 파도에 휩쓸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파도로부터 멀찍이 피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파도를 피해 도망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파도를 피할 곳은 없었다.
언제나 내 앞에는 파도가 덮쳐왔다.
파도 앞에서는 언제나 겁쟁이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파도를 맞이한다.
무섭지 않냐고 물으니까 파도가 있어서 즐겁다고 한다.
파도가 몰려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파도가 몰려오면 파도와 달리기 시합을 하고, 파도가 덮치면 파도 속으로 들어가고, 파도가 지나갈 때면 파도 위에 올라탄다고 한다.
파도를 알면 파도가 즐겁다고 한다.
아! 두려움과 즐거움은 같은 것이었구나! 알지 못할 때는 두렵지만 알고 나면 즐겁다.
모를 때는 무섭지만 사귀고 나면 친근하다.
서툴 때는 긴장되지만 익숙해지면 편안하다.
똑같은 상황인데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인다.
두려움이란 것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인생이 구슬치기처럼 즐겁다고 한 것도 내 생각이었고 인생이 고해라고 했던 것도 내 생각이었다.
내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