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네 잔 정도의 커피를 마신다.
일단 출근해서 한 잔.
한두 시간 지나서 한 잔.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한 잔.
오후 서너 시경에 한 잔.
기본적으로 이렇다.
내가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교회 옆에 있었던 우리 집에서 종종 커피를 끓여서 교회로 날랐다.
교회에서 끓일 수도 있었는데 아마 교회 부엌에서도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끓는 물에 가루 커피를 타고 우윳빛 나는 커피크림과 설탕을 섞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커피는 맥스웰이었고 크림은 프리마라는 제품이었고 설탕은 백설 설탕이었다.
각각 1대 1대 1의 비율로 커피를 탔다.
나는 어머니 옆에 있다가 커피 한 사발을 얻어 마시곤 했다.
달달하고 걸쭉한 맛의 커피였다.
군것질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던 때였는데 나에게는 커피도 군것질거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커피가 없을 때면 크리마와 설탕을 섞어 마시곤 했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 도서관 앞에 자판기가 한 대 있었는데 블랙커피, 크림커피, 밀크커피, 유자차, 율무차가 나왔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밀크커피를 눌렀었다.
자판기 커피는 대학생 때도 계속 이어졌다.
가끔 학교 앞에 있는 커피숍에 들르기도 했는데 거기서도 크림과 설탕이 혼합된 밀크커피가 나왔다.
아침 시간에는 커피에 날계란을 풀어서 건네주기도 했다.
군 복무를 시작할 때 논산훈련소에서의 6주 동안은 커피를 마실 기회가 없었다.
당시에 둘째 누나의 시댁 식구 중에 논산훈련소 대대장이 한 분 있었다.
교회에서 그분을 만났는데 자기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 편히 앉으라고 했다.
뭐 마시고 싶은 것 있냐고 묻길래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훈련소 퇴소를 앞두고 30여 킬로미터의 야간행군이 있었는데 그때 내 수통에는 밀크커피가 가득 들어 있었다.
서른 즈음에는 맥심모카골드에 푹 빠져 있었다.
가방 안에 다섯 봉지 정도 넣고 다니면 마음이 든든했다.
아내와 함께 배낭여행을 갈 때도 맥심모카골드를 충분히 챙겼다.
어디를 가더라도 뜨거운 물 한 잔 얻어서 막대봉지를 뜯으면 그 자리가 카페가 되었다.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났을 때 맥심모카골드 몇 봉지 건네주면 너무나 고맙다는 인사를 다섯 번 정도는 들었다.
다방이 커피숍으로 커피숍이 카페로 이름을 바꾸던 시기에 맞춰서 나의 커피 호감도도 밀크커피에서 에스프레소커피로 바뀌었다.
에스프레소커피는 쓰고 독하다.
하지만 그건 에스프레소커피를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다.
몇 번 마시고 보면 입에서는 쓰지만 속에서는 개운하다.
작은 커피잔에 담긴 에스프레소커피는 ‘커피의 심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든 커피는 에스프레소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 심장도 커피의 심장인 에스프레소로 연결되어 있다.
내 일상에서 커피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현대인의 삶에서 커피가 빠진다면 어떤 그림일까?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대한민국은 지금 커피홀릭이라고 한다.
커피가 빠진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커피 때문에 큰일 날 것 같다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커피가 유럽인들에게 유행을 타게 되었을 때였다.
어떻게 이교도인 무슬림들의 음료를 마실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이 있었다.
교황에게 커피를 금지하게 해 달라고 청원도 하였다.
1605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자신이 직접 커피를 마셔 보았다.
별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황은 커피의 맛과 향에 푹 빠져버렸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무슬림들만 마시게 하는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교황은 커피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이제 커피는 거룩해졌다.
맘껏 마셔도 되는 음료가 되었다.
커피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