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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6. 2023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현실에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궁궐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갖춰진 것 같다.

온갖 보물과 산해진미의 음식, 최고급 재료로 만든 옷과 편안한 잠자리가 갖춰져 있다.

허드렛일은 신하들에게 시키면 된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하지만 궁궐 안에 있는 사람은 궁궐 밖을 모른다.

궁궐 안과 궁궐 밖 중에서 더 넓은 세상은 궁궐 밖이다.

궁궐을 나서서 더 넓은 세상을 한번 보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나가야 한다.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닐 수도 없다.

철저히 격식에 맞춘 옷을 입어야 한다.

아무 말이나 해서도 안 된다.

늘 입조심해야 한다.

배고프다고 아무것이나 먹어서도 안 된다.

아랫사람들이 정해주는 것만 먹어야 한다.

궁궐 안에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얻은 자유로운 삶 같지만 사실은 궁궐 안에 갇혀 지내는 자유롭지 못한 삶이다.     




마크 트웨인의 동화에 나오는 왕자와 거지는 두 사람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여겼다.

자신이 처한 현실만 벗어나면 자유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둘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기로 했다.

자유를 얻었을까?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곧바로 새로운 구속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자유는 구속의 대가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왕자와 거지 모두 이전의 삶이 훨씬 자유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상황일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현실이고 자신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상황이다.

물론 외부로부터 오는 힘에 의해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재의 자신의 모습은 과거에 자신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못마땅한 면이 있다면 과거에 자신이 덜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노력과는 별개로 누군가 나타나서 자신을 도와주거나 어떤 신비로운 마법 같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이 그런 생각을 품었다.

그런데 정말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런던의 어느 부자가 자신에게 유산을 넘겨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식간에 인생이 확 바뀐 것이다.

그러면 자유로운 것일까?

소설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알려준다.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가고 부잣집 도령처럼 살면서 돈을 펑펑 쓴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원래 자신의 자리인 고향으로 돌아오는 게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은 말하고 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는 사랑의 묘약을 찾는 순진한 청년 네모리노가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확 빼앗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랑의 묘약이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백마 탄 왕자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한다.

하지만 남미의 아즈텍, 잉카, 마야 제국은 백마 탄 사람들이 와서 그 지역을 파멸시켜 버렸다.

백마 탄 왕자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은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설령 그렇게 결혼했다고 하면 신데렐라의 궁중 생활은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한때 헨리 8세의 부인이었던 앤은 고작 3년을 왕비로 지내다가 헨리 8세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우리 조선시대의 장희빈도 비슷한 운명을 살았다.

차라리 왕비의 자리에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더 자유로고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삶이 남들에 비해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내 삶의 자리를 바꿀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럴 때 기억하자.

좋은 나무는 빨리 베이지만 못난 나무는 오래도록 산을 지킨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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