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Apr 28. 2023

‘마지막’이라는 말은 끝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하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기회가 없다.”라고 야단치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사의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하는데 마지막이라는 말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말이다.

이제 끝났다는 말은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안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면도 있고 안 좋은 면도 있다.

그러니까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이제 끝났다고 하면 좋은 면도 끝이 나고 안 좋은 면도 끝난다.

좋은 면이 끝이 나면 그다음에는 안 좋은 면이 보일 테니까 이런 경우는 안 좋은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절망적인 마지막이다.

반면에 안 좋은 면이 끝이 나면 그다음에는 좋은 면이 보일 테니까 이런 경우에는 좋은 마지막이고 할 수 있다.

매우 희망적인 마지막이다.

이런 마지막도 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면 그다음에는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말은, 그다음에 다시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크게 야단을 맞는다든지, 혹은 더 이상 실수나 잘못이 용납되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든지 하는 부정적인 암시를 준다.

그런데 이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시무시하게 두려움을 주는 말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이라는 말 속에는 ‘이번이 기회이다’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지금까지는 잘 못해 왔지만 이 마지막에 마무리를 잘 짓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을 준다.

모든 일에는 맺고 끊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바로 마지막 시간이다.

안 좋은 것은 여기서 묶고 끊어야 한다.

더 이상 질질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마지막이라는 결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에게는 ‘마지막’이 저주가 아니라 소망이 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후 졸업식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학교에 가도 공부를 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더 이상 가르칠 내용이 없었다.

이미 시험을 치렀으니 배울 것은 다 배웠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참고서를 쌓아놓고 문제집을 꺼내서 부지런히 풀고 있었던 우리들이었지만 그때는 누구 하나 책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학교에 오면서도 가방은 집에 두고 왔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우리 반 반장이 강단으로 올라가더니만 한마디 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시간이니까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자고 했다.

어쩌면 이제 곧 졸업을 하면 평생토록 만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1번부터 60번까지 모두들 강단에 올라가서 한마디씩 하고 내려왔다.

그때가 우리의 마지막 고등학생 시간이었다.




졸업식과 함께 고등학생 시간이 끝이 났다.

매일 얼굴을 마주했던 친구들, 함께 도시락을 까먹었던 친구들과 더 이상 같은 공간 안에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헤어져야만 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각자 자기의 길을 찾아갔다.

나도 나의 길을 따라갔다.

다시는 고등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이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에 나에게 새로운 마음이 들어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마음이다.

하나는 끝나지만 다른 하나는 이제 시작이다.

끝을 맺는 그 지점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러니 끝을 잘 맺고 시작을 잘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매일매일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다.

밤이 깊어지면 ‘오늘’이라는 하루가 끝을 맺는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에 ‘오늘’이라는 하루가 시작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