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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9. 2023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하는 습관 때문에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이 손에 잡힌다.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일찍이라는 때에는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머릿속에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생각은 많이 난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라는 말만 뇌까린다.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서 일에 몰입해야 하는데 그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서 마감시간이 눈앞에 보이면 그때서야 몸이 부산을 떤다.

생각의 속도는 고속도로를 달려 나간다.

실수하면 만회할 시간이 없기에 허투루 보내는 시간도 없다.

일이 척척 들어맞으며 한 조각 한 조각 퍼즐 맞추듯이 짜 맞춰진다.

큰 그림이 보이고 그 안에 있어야 할 작은 그림도 그려진다.

그리고 마감시간 바로 전에 일이 마무리된다.

이 짧은 시간에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내가 천재이거나 능력자인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나 자신이 대견하다.




나만의 독특한 방법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감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빈둥빈둥 놀다가 시간 다 되어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이 난리를 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마감시간 전략을 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그동안 어떻게 하면 일을 효율적으로 마무리지을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몸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생각의 깊이에 빠지는 게 더 값진 일이라고 한다.

부지런히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 일해도 충분할 때가 있다.

한 시간을 일해도 남들 100시간의 양을 채우는 사람도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어떻게 하면 국가공동체를 부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무턱대고 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서 분업을 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 어느 극작가를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막 16부작 미니시리즈 작품이 끝난 때여서 여유를 즐기던 때였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팔에 링거주사를 꽂은 채로 글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채택되고 드라마 제작이 시작되면 서둘러 그다음 원고를 써야 하는데 생각만큼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한다.

원고 마감시간은 빚쟁이처럼 정확하게 찾아온다.

한 번도 잊어버리거나 시간을 늦추지 않는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이 얄밉기도 할 것이다.

잠시라도 잡아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잠자는 시간이라도 줄이고, 밥 먹는 시간이라도 줄여본다.

체력이 견디기 힘들어하니까 링거병을 걸어놓고 수액에 의지해서 버텨낸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조금만 일찍 쓸걸’ 후회한다.

다음에는 일찍 일찍 해야겠다고 작정을 한다.

그러나 그다음에도 똑같다.

일찍은 글이 안 써진다.




3년 전에 하루 한 편의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정말 줄기차게 글을 썼다.

밤 12시가 되기 전에 한 장의 글을 완성시키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그 작정한 일이 그칠 때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최근에 와서 띄엄띄엄 글을 빼먹고 있다.

밤에 써야겠다고 미루다가 막상 밤 시간이 되면 어영부영 시간을 놓치기 일쑤다.

시계가 자정을 알리면 ‘조금만 일찍 쓸걸’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럴 때마다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의 한 줄이 떠올린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나에게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내가 마감시간이 다 되도록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다.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마감시간의 전략을 너무 많이 사용하다가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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