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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12. 2023

불을 가까이하되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양수리 다녀오는 길에 조안사계절찐빵집에 들렀다. 찐빵과 만두를 포장해서 집에서 쪄 먹는다고 했더니 사장님이 찜통에서 10분은 쪄야 한다고 했다. 그러냐고 하면서 궁금한 마음에 여기 가게에서는 몇 분을 찌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가게에서는 8분 동안 찐다고 했다. 빵은 똑같은데 왜 여기서는 8분이고 집에서는 10분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장님 말씀이 찐빵집과 가정집은 불의 세기가 다르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하고 돌아섰다. 불의 세기가 세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센 불에서는 빨리 찔 수 있고 빨리 익는다. 센 불은 시간을 줄이는 것 외에도 음식의 맛을 좌우하기도 한다.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과 집에서 끓여서 먹는 라면은 맛이 다르다. 조리법의 차이가 아니다. 라면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조리법이 통일되어 있다. 그러니 라면의 맛이 다른 이유는 불의 세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센 불에서 조리하는 음식이 약한 불에서 조리하는 음식보다 맛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편의점에서 먹는 사발면도 맛있지만 집에서 냄비에 끓인 라면이 더 맛있는 이유는 집에서 냄비에 끓인 물이 편의점 온수기에서 나오는 물보다 더 뜨겁기 때문이다. 불이 세면 다 타버리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물건이든지 불에 타면 약해진다. 부식되고 잿더미가 되어서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하지만 센 불에서 짧은 시간 동안 잘 달구면 훨씬 강해진다. 이 사실을 알았기에 대장장이들은 불 속에 쇳덩이를 넣었다가 뺀 후 망치로 두들겨서 강한 철을 만들었다. 도공들은 센 불에 흙으로 빚은 그릇들을 넣었다가 뱄다. 그러면 진흙으로 빚은 그릇도 강한 토기가 되기도 하고, 도기가 되기도 하고, 자기가 되기도 한다. 센 불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면 진흙도 이전보다 더 강해진다.




불은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라는 힘을 내기도 한다. 불이 타오르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강한 힘이 느껴진다. 에너지라는 것이다. 뜨거운 열기가 강한 에너지가 되어 힘이 생기면 주전자의 뚜껑을 여닫기도 한다.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힘이다. 그 힘을 잘 이용하면 거대한 기차를 움직일 수도 있고 바다 위의 배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의해서 증기기관차가 만들어졌고 증기선도 만들어졌다. 뜨거운 불 때문에 얻게 된 에너지가 공장의 기계들을 돌리게 했다. 그 뜨거운 불이 산업혁명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뜨거운 열기가 똥구멍으로 빠져나갈 때 반동의 힘이 생기는데 그 힘으로 하늘로 로켓도 쏘아 올리고 달나라로 우주선을 보내기도 한다. 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불이 있어서 가능했다. 에너지가 있어서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까 불이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은 3천 년 전에 벌써 멈춰버렸을 것이다. 불을 다스릴 수 없었다면 산도 들도 집도 마을도 다 태워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불이 있었고 불을 다스릴 지혜와 용기가 있었다. 불을 내고 불을 다스리면서 힘과 지식도 더 많아졌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창조하고 불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이 에덴동산 앞에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었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가 더 이상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에덴동산 근처에 살려면 불 가까이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 밖에 있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불 속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불을 손에 넣으려고 해도 안 된다. 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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