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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14. 2023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이름은 무엇이냐?

고향은 어디냐?

나이는 몇 살이냐?

무슨 일을 하느냐?

등과 같은 질문이다.

아이들은 친구 아버지로부터 “네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시니?”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인간은 의심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바로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말이다.

이름을 먼저 물어본다.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 이름인 ‘박은석’을 말하면 그 사람은 말하는 순간에 내 얼굴을 떠올릴 것이고, 내가 했던 말과 내가 보여준 행동들을 떠올릴 것이다.

내 이름이 곧 나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어떤 순간에 불려지는지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진다.




내 이름이 불려지고 칭찬하는 말이 연이어 나오면 굉장히 기분이 좋다.

반면에 내 이름을 들먹이면서 욕을 한다거나 놀려대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기분이 상한다.

단순히 이름을 가지고 별명을 붙인다거나 장난을 쳤을 뿐이라고 하는데 그 이름의 당사자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는 것도 아니고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가르치시면서 “어디 가서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 이름에 먹칠한다는 것이 먹물로 아버지의 이름을 지운다는 말은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함부로 불리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그 말은 못된 짓을 해서 아버지를 난처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함부로 불려지면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의 이름만 만만하게 불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안 전체가 만만한 집안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사람들의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어렵게 불려지면 그건 좋은 일이다.

아버지가 그만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집 대문에 문패를 달아놓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이름 석 자는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쉽게 부를 수도 없었다.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들이 나에게 “네 아버지 이름이 뭐냐?” 물으시면 나는 주저주저하면서 “제 아버지의 존함은 박 자, 태 자, 윤 자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여러 번 주의를 주면서 가르쳐 주셨다.

나처럼 대답하지 않고 자기 아버지의 이름 세 글자를 주르륵 대답하는 친구가 있으면 속으로 그를 깔보았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면서 말이다.




스물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친 후에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유품들을 하나씩 정리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된 문서들을 꺼내서 아버지의 이름을 지워나가야 했다.

호적 정리가 다 끝났을 때였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도장을 꺼내시더니 차마 거기에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지우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이제 아버지의 이름은 그 도장 하나만 남았다고 하셨다.

그 도장을 어떻게 할까 하시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밀고 그 위에 어머니의 이름을 새기셨다.

마치 아버지의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 속에 간직하겠다는 듯이.

아버지의 이름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사라지자 아버지가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아버지의 이름이 불릴 때는 몰랐었다.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존재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이름이 그 사람의 존재였다.

이름이 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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