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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

by 박은석


휴일이었는데 새벽부터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노동자들의 하루 근무 시간을 채운 것 같았다.

집에 왔더니 쌓인 피로가 느껴졌다.

잠이 부족했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마음만큼 잠이 채워지지 않았다.

피곤한 채로 저녁까지 왔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뭘 해야 할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드러누웠다.

애저녁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깊고 달콤한 잠이었다.

아침까지 주욱 잘 것 같았다.

그런데 밤 11시 반에 깼다.

3시간을 잔 것이다.

새벽에 자지 못했던 잠을 저녁에 다 보충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고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있듯이 내 몸에는 잠자는 시간 보존의 법칙이 있나 보다.

적게 자면 적게 자는 대로 많이 자면 많이 자는 대로 하루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적게 자면 그다음에는 더 자고 많이 자면 그다음에는 적게 잔다.




수면시간의 양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러 면에도 일정한 질량이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처럼 슬픔의 양과 기쁨의 양이 천칭 저울 위에서 수평을 이루는 것 같다.

지금 편안하고 기쁜 날이 이어지는 것은 예전에 힘들고 슬픈 날을 다 보냈기 때문이다.

한평생 살면서 각자가 흘려야 할 눈물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과거에 충분히 쏟을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면 지금 기쁨의 웃음을 실컷 웃을 수 있을 테고 그때 충분히 눈물을 쏟지 않고 남겨뒀다면 지금 조금 더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반대로 과거에 기쁜 일들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면 안타까운 말이지만 앞으로 슬픈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기쁨의 물을 담는 양동이에 100까지 다 채웠으면 그다음에는 줄어드는 일만 남았다.

100까지 채운 기쁨의 물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 순간 우리에게 슬픔이 시작된다.




내 삶이 힘들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면 과거의 기쁨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미래에 다가올 기쁨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살아가는 이 현실만 우리 삶의 전부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듯이 우리 삶에도 기쁨 보존의 법칙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면 지금의 힘든 현실을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용돈을 받은 날 다 써버리는 아이는 그날 하루 신나게 즐기자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껴 쓰고 모아두는 아이는 그 용돈을 가지고 나중에 즐기려고 한다.

이 아이에게나 저 아이에게나 용돈은 동일하다.

언제 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일평생 써야 할 기쁨의 총량이나 슬픔의 총량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나눠서 쓴다.

그러니까 매일 기쁨 조금 슬픔 조금이 섞인 삶을 사는 것이다.

웃음의 양도 눈물의 양도 그렇게 조금씩 나눠서 쓰고 있다.




어렸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박치기왕 김일 선수인 줄 알았다.

그의 박치기 한 방이면 모든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신창이가 되어 휠체어에 탄 그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처럼 보였다.

어렸을 때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한 탓에 은퇴 후에 몸 고생을 심하게 하는 운동선수들이 많다.

일평생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근육의 양이 있는데 그것을 너무 일찍 소진해버린 것이다.

건강에는 자신 있다며 쌩쌩 돌아다니던 사람이 남들보다 먼저 몸져누울 수 있다.

100대 명산을 종주했던 사람인데 무릎 수술받고 동네 산책도 힘들어하기도 한다.

반면에 맨날 몸이 아프다고 골골대면서도 팔십까지 잘 견디는 사람들도 있다.

푸시킨은 삶이 우리를 속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질량을 우리가 어떻게 쓰고 있느냐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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