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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아는 사람과 감사를 모르는 사람

by 박은석


우리가 잘 아는 오프라 윈프리라는 흑인 여성이 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불우했다.

부모가 이별을 했다.

십대의 나이에 원치 않게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폭식증에 걸린 사람처럼 많이 먹었다.

몸이 뚱뚱해졌다.

남자들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마약을 했고 술을 마셨다.

꿈도 희망도 없었다.

되는 대로 살다가 되는 대로 가는 삶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가 찾아왔다.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였는데 이제는 자신을 돌보려고 찾아온 아버지였다.

그동안 아버지에게도 굉장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아버지는 오프라 윈프리를 잘 양육하려 하였다.

그녀가 다시 공부를 하고 미래에 대해서 꿈꿀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녀에게 독특한 습관을 심어 주었다.

매일매일 순간마다 감사하는 습관이었다.




십대의 나이 때부터 오프라 윈프리는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감사 생활은 매일 감사일기를 쓰는 것으로 표현된다.

감사일기에 기록하는 내용은 거창한 일들이 아니다.

‘오늘 친구가 커피를 한 잔 사 줘서 감사했다.

오늘 산들바람이 불어서 시원했다.

그래서 감사했다.’와 같은 내용들이다.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다.

감사할 거리도 아니다.

그런데 오프라 윈프리는 그 사소한 일에 ‘감사’의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그랬더니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감사의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는 우연한 일이고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감사의 의미를 부여하자 그 일은 자신을 위한 특별한 일로 느껴졌다.

산들바람이 부는 이유는 내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공교롭게도 오프라 윈프리가 감사의 생활을 시작하고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자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감사의 생활을 살기 전에는 자기 인생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일은 다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책임도 법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만약 정말로 그 사람이 책임을 진다면 그 사람은 망하고 말 것이다.

자신이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감사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할 일이 없다.

그들의 입에서는 감사의 말보다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이 더 많이 나온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인생은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밀크커피가 나오는 자판기 같은 것이 아니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러도 커피가 나오지 않는 날이 있다.

커피 대신에 물만 나오기도 한다.

어떤 때는 커피는 나오는데 컵은 안 나오는 날도 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날이 있다.

커피 자판기를 점검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커피 자판기를 열어서 그 안에 컵은 충분히 있는지, 커피와 크림과 설탕은 적당량이 있는지 체크해주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 커피와 크림과 설탕, 그리고 종이컵과 물도 채워 넣어야 한다.

누군가 그런 수고를 해주어야 우리가 그 자판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누군가의 수고를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받아 누리고 있다.

머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감사를 하면 인생이 바뀔 텐데 그 사실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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