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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지 그냥 있어야 하는지

by 박은석


내 기억에 우리나라 텔레비전 드라마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방송된 드라마는 <전원일기>였다.

1980년 10월 21일에 첫 방송을 한 후에 2002년 12월 29일에 마지막 방송을 했다고 하니 그 세월이 무려 22년이었다.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때 <전원일기>가 방송되는 화요일 저녁이면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곤 했다.

그 시절을 살았던 대한민국 사람치고 전원일기를 보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시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고 우리 동네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때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정말 좋겠네”라고 재잘거릴 때였다.

텔레비전에는 아무나 나올 수 없고 훌륭한 사람들만 나오는 줄 알았다.

그랬으니까 양촌리 사람들은 모두들 훌륭한 사람들이고 복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드라마 재방송이 있었던 때도 아니었다.

한 번 못 보면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화요일 저녁 8시를 사수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서 내 머리가 커졌기 때문인지 <전원일기>에 대한 관심이 뚝 끊어졌다.

분명히 매주 방송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도 달달 외우다시피 했었다.

그들의 말투 하나하나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들의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끔씩 아직도 전원일기가 방송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전원일기>를 즐겨 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전원일기>도 수명을 다하게 되었다.

현대인의 삶에 더 이상 맞추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전원일기>의 등장은 화려했다.

1980년대는 우리 사회가 도시화, 산업화로 치닫고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은 고향이라 불리는 시골에 돌아가곤 했다.

<전원일기>라는 제목만 봐도 고향 생각에 울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시절은 변하기 마련이다.

자고 나면 확 변해버리는 현대인의 삶에 황소가 걸어가듯 느릿느릿 변하는 전원의 생활은 더 이상 어울릴 수가 없었다.

<전원일기>를 종영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미 시청률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시청률이 높았다면 어떻게든 끌고 갔을 텐데 그러지 못한 걸 보니 분명히 떨어진 것이다.

<전원일기>가 마지막 방송을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때 나도 만감이 교차했다.

마지막 방송은 시간을 내서 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마지막 방송을 보지 못했다.

아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 무관심 속에서 <전원일기>는 막을 내렸다.




<전원일기> 첫 방송의 제목은 ‘박수칠 때 떠나라’였다.

그리고 마지막 방송인 1088화의 제목은 ‘박수칠 때 떠나려 해도’였다.

만감이 교차했다.

나에게도 <전원일기>를 보면서 박수를 쳤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전원일기>가 끝날 때는 끝나는 줄도 몰랐다.

<전원일기>의 초대 작가 차범석씨는 <전원일기>가 성공가도를 달리던 1981년에 돌연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그때 왜 그만두냐는 질문에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가 그만둔 후에도 <전원일기>는 계속 상승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전원일기>가 끝날 때는 박수를 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그 후에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영원히 오르는 길도 없고 계속 박수를 받는 일도 없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지, 아니면 박수를 받았으니까 그 자리에 더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제발 누가 나에게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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