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싶어 한다.
밖에서는 말단이어도 집 안에서는 왕이기를 원한다.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면 견디기 힘들어한다.
복수를 다짐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를 이루기 때문에 각 나라는 자기 나라 중심의 정책을 펼친다.
자기 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서 최고라고 믿는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 국민들의 애국심은 대단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변변치 않은 나라이니까 자기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나라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에 자기 나라의 위상을 높이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던 김구 선생도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문화강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기를 바랐던 것이다.
예전에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세계지도를 본 적이 있다.
내가 그전까지 보아왔던 지도와 달랐다.
너무나 색다른 지도였다.
그 지도는 중국 땅을 지도의 정중앙에 자리 잡게 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지도는 왼쪽 위에는 유럽이 있고 그 아래는 아프리카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아메리카 대륙이 그려진 지도이다.
중국은 지도의 중심에 있는 게 아니라 왼쪽 위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도를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그 지도의 정중앙에는 대한민국이 보인다.
비록 땅덩어리가 작기는 하지만 분명히 대한민국이 가운뎃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도를 만든 사람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계의 중앙이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그 종이 한 장 속에 담겨 있다.
중국에서 지도를 만든 사람도 그런 속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중국을 지도의 중앙에 위치시킨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품고, 자기 나라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개인과 개인이 부딪히고 국가와 국가 간에 갈등이 생긴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덮고 넘어갈 수만은 없다.
갈등이 생기고 충돌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에게 돌아오고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갈등들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과 개인이, 국가가 국가가, 상호 존중하며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만난다면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상호 존중하는 차원에서 UN을 비롯한 국제단체의 회의에서는 통역관을 세우고 있다.
한 국가의 대표자라면 국제회의에서 영어나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 국가의 고유한 언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일부러 통역관을 세워 놓는다.
그 나라의 언어를 존중하는 것은 그 나라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자기 진영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했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상대방보다 앞서려고 하였다.
상대방의 미사일보다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미사일을 만드려고 하다가 우주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럴 정도였으니 지도도 당연히 자기중심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소련에서 만든 지도는 소련을 크게 보이게 제작했고 미국에서 만든 지도는 당연히 미국을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서는 대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국제기구인 UN에서는 미국이나 소련이나 어느 나라의 땅이 더 넓은지 가늠이 되지 않는 지도를 만들었다.
평면적인 지도가 아니라 입체적인 지도이다.
우리의 시선을 적도에 맞춘 지도가 아니라 북극에 맞춘 지도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지도가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도이다.
보는 방식을 조금만 바꿔도, 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