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un 04. 2023

어느 철학자의 가르침

스토아철학자 무소니우스를 생각하며


로마시대에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많은 활동들을 하였다.

그중에 스토아학파가 있었다.

스토아학파는 제논으로부터 시작된 철학 사조로서 인간의 이성을 굉장히 강조하였다.

철학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글 좀 읽은 사람이라면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네카의 <노년에 대하여>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수상록> 같은 책은 인문학 서적을 읽다 보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책으로 꼽힌다.

그들은 모두 스토아학파에 속한 인물들이다.

모든 철학자들의 고민이겠지만 스토아학파 철학자들도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고민 끝에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있다.

그것은 덕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을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덕스러운 삶이란 타고난 자신의 재능대로 사는 삶,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삶을 의미하였다.




이 스토아학파 중에 가이우스 무소니우스 루푸스(Gaius Musonius Rufus)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서기 30년경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분위기를 따랐다면 정치인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철학을 공부하기를 더 좋아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당대 최고로 손꼽혔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 네로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친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네로는 무소니우스를 구금하였다가 에게해에 있는 키클라데스제도의 자이아로스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 섬은 너무나 황량한 바위섬이었다.

먹을 식량도 넉넉하지 않았고 마실 물도 여의치 않았다.

이런 환경이었기에 자이아로스섬은 당시에 최고로 악명 높은 유배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곳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난 것으로 여겼다.

유배를 가는 중에 죽든지 아니면 섬에서 굶주려 죽든지 목말라 죽든지 할 것이라 여겼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그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황제의 눈 밖에 났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무소니우스는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유배지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이아로스섬을 살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였다.

자신이 믿고 가르친 철학을 삶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인생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믿었다.

비록 섬에 갇힌 상태이지만 그곳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토아학자답게 욕심부리지 않고 소박한 삶을 즐겼다.

그러던 중에 숨겨진 샘물을 찾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하였다.

무소니우스의 영향으로 섬사람들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의 생각이 밝아지고 섬의 생활환경도 밝아졌다.

살기 힘든 섬에서 살기에 괜찮은 섬으로 변화되었다.




이후에 무소니우스는 복권되었다가 다시 추방을 당하는 일을 겪었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철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배운 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왜 그렇게 철학을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는 평상시에도 "사람들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는 잘살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처절하게 공부하고 공부한 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무소니우스에게 에픽테투스라고 하는 걸출한 철학자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배운 대로 사는 것.

자신의 인생이 소중하다고 믿고 그 믿음대로 사는 것.

운명을 탓하지 않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무소니우스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나 감격스러운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