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un 09. 2023

영화관에서 만난 꼴불견 커플 때문에


얼마 전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이라 관람객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시선을 빼앗아 가는 장면이 있었다.

내 자리에서 서너 줄 앞쪽에 반바지 차림의 연인이 앉아서 팝콘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꼴불견이었다.

남녀 둘이 앞좌석 위로 다리를 쭉 뻗어 있었다.

물론 앞좌석에 앉은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들의 맨발을 앞좌석 위로 뻗을 것은 무엇이람.

그들의 맨발을 보는 순간 팝콘 맛이 갑자기 떨어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발 좀 내리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내 옆의 동료에게 그들의 모습을 보라고 했더니 동료도 굉장히 불쾌해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의가 없다느니,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저렇다느니,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라느니 하면서 투덜거렸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은 가시질 않았다.




다행히 조명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그들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2시간의 영화 시간이 끝나자 극장의 조명이 다시 켜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다시 오른쪽 앞의 그 연인들에게 시선이 갔다.

어떤 인간들인지 낯짝이라고 한 번 보려고 했다.

통로로 나오는 그들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20대의 젊은 남녀인 줄 알았다.

티셔츠에 반바지에 맨발 차림이었으니까 당연히 20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커플로 보였다.

60대 초반쯤은 되어 보였다.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닌가 하여 가까이 가서 얼굴을 보았다.

역시 60대 초반은 되어 보였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반바지에 맨발 차림이니까 당연히 20대인 줄 알았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으니까 20대인 줄 알았다.

앞좌석에 다리를 올려놓은 꼴불견을 하고 있으니 20대인 줄 알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예의 없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하면서 부정적인 말로 평가하는 일들은 많다.

하지만 “요즘 나이 든 사람들은...” 하면서 뭐라고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 머릿속에 이미 젊은 사람들은 버릇없고 예의 없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정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에 나이 든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너그러웠다.

그들은 내 동년배이거나 나보다 인생 선배들이니까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무례한 행동을 하고 예의 없는 모습을 보이고 남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 찡그리는 언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만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나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전에 20대의 젊은이들이 나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자기들만의 자유분방함을 뽐내는 이들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민폐를 행하고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떠나는 이들을 보았다.

그때의 경험이 나에게 20대의 젊은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20대의 젊은이 중에도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기를 잘하고 매너 좋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좋은 점은 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했다.

나의 뇌에서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명령을 내린 듯하다.

그러면서 한두 사람의 부정적인 모습을 20대 젊은이들 전체의 모습으로 여겨버리는 일반화의 오류를 나 자신이 범하고 있었다.

그건 세대 간의 문제도 아니고 나이의 문제도 아니었다.

단지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일 뿐이었다.

갑자기 60대의 그 꼴불견 커플이 더 얄미워지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철학자의 가르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