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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14. 2023

까치마을인데 까마귀들만 득실거린다


아침에 까치 울음소리가 들리면 귀한 손님이 오고 까마귀가 울면 뭔가 안 좋은 소식이 들린다고 한다.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어떤 새가 우는지 관심은 간다.

내가 사는 동네가 까치마을이어서 그런 것 같다.

까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 적도 많았다.

그럴 때는 아침 단잠이 깼다는 아쉬움보다 일어날 시간에 제대로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침에 까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그날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는 기억은 없다.

그런 날이라고 해서 특별한 날이 되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을 뿐이고 늘 만나는 사람들을 만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옛 어른들의 말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말인가?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인가?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컴퓨터도 없고 전화도 없고 편지 왕래도 흔치 않아 서로의 안부가 궁금했던 우리 조상들은 까치 울음소리에 자신의 마음을 감정이입시켰던 것이다.




아침에 까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간혹 들리는 까치 울음소리가 반가웠을 것이다.

그 반가운 마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의 얼굴에 갖다 붙인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에 그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연인데 마치 계획된 일이었다는 듯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내 차가 신호등 앞에만 다다르면 마치 귀한 사람을 영접하듯이 신호등 불빛이 초록색으로 짜자잔하고 바뀌는 날 같은 경우이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시간이 되었으니까 신호등 불빛이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의 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을 한다.

우연을 우연으로 마무리짓기에는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무리 근거 없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유를 듣고 싶어 한다.

이유를 알아야 마음도 편안해진다.

우리 조상들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에 반가운 사람을 만난 이유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랬더니 그날 아침에 특별하게도 까치 소리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 까치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신기했지.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오늘 귀한 손님을 만난 거야.”라는 이야기가 한 토막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사람도 실험해 보았을 것이다.

자신도 반가운 사람을 만났는데 아침에 까치 소리가 들렸나 안 들렸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더니 분명히 까치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맞아, 맞아. 아침에 까치 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돼.”

이렇게 두 사람이 뭉쳤다.

그러면 그 곁에 한 사람이 더 낀다.

이 사람은 아침에 까치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앞의 두 사람이 까치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까 자기도 들었을 것이라고 아예 믿어버린다.




한 사람의 경험과 또 한 사람의 경험 그리고 한 사람의 믿음이 합해지면 엄청난 힘이 된다.

사람들이 여럿 모인 곳에서 세 사람만 하늘을 쳐다보면 나머지 모든 사람도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세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 걸 보니까 하늘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나 보다’ 하고 믿어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아침에 들린 까치 소리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마치 정설처럼 굳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아침에 까치 소리가 들리면 벌써 반가운 마음이 들게 된다.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네 이름도 까치마을로 지었을 것이다.

찾아보니까 우리 동네 말고도 전국의 여러 곳에 까치마을이 있었다.

물론 까마귀마을은 찾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까치마을에 까치는 안 보이고 까마귀들만 득실거린다.

이걸 어쩌나?

오늘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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