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May 21. 2023

언제나 감격스러운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


애물단지 같은 물건이 있다.

책상 위에 있는 아이패드와 갤럭시 탭이다.

그것들을 처음 구입했을 때는 너무 귀한 물건이었다.

아이들이 무료하지 않게 영상도 보여주고 사진도 보여주었다.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갈 때는 게임기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는 전자책을 보는 도구이기도 했고 문서 작업을 하는 기기이기도 했다.

깨질세라 조심하면서 다뤘다.

그랬기에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것들을 사용하는 빈도가 확 줄어들었다.

스마트폰 액정의 크기가 커지고 아이들도 저마다의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적어도 그 기계로 수십 권의 책을 봤으니까 책값을 환산해 보더라도 본전을 뽑았다.

내 눈에서 안 보여도 아쉬울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기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무슨 용도로라도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럴 일이 점점 적어지고 있지만.




처음에는 귀하다며 때가 탈까 먼지가 묻을까 조심히 다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구석으로 물리는 물건들이 많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다 그렇다.

어릴 적 딱지치기할 때 모았던 그 많은 딱지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아궁이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비싼 신발이라며 아껴가며 신었던 운동화는 벌써 버려진 지 오래다.

처음에는 감격스러웠는데 그 감격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덤덤함이 차지했다.

그리고 그 무덤덤함이 쌓이고 쌓이면 귀찮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나에게 온 것들은 애물단지가 된다.

새 옷의 감격은 1주일이나 갈까? 새 자동차의 감격은 한 달이나 갈까? 새 집의 감격은 1년이나 갈까? 그 정도는 갈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감격은 그보다 더 짧다.

감격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짧은지 잠깐 동안만 마음에 찾아왔다가 재빨리 사라지는 게 감격이다.

오래도록 붙들고 싶은데 잡히지 않는다.




감격이 사라지는 이유는 더 이상 그것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값이 얼마인지는 그다음의 문제이다.

안데르센이 <성냥팔이 소녀>를 쓸 당시에는 성냥이 귀했다.

하지만 요즘 성냥을 보고 감격하는 사람은 없다.

성냥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켤 때나 성냥 구경을 할 것이다.

고골리의 단편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외투 한 벌 강도 맞은 것 때문에 인생이 무너져버린다.

기껏 옷 한 벌 가지고 뭐 그러냐고 할 수 있지만 외투 한 벌이 목숨을 쥐락펴락할 만큼 귀했던 때도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가 쓰다가 쉽게 버리는 물건들도 한때는 매우 귀한 것들이었다.

단추 하나도 볼펜 한 자루도 그랬다.




한때는 유리가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집에 유리창이 몇 장이냐에 따라서 유리 세금을 매겼다고 한다.

한때는 후추나 향신료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비쌌다고 한다.

우리 집 싱크대 밑에 처박혀 있는 조미료들도 한때는 임금님조차도 구하기 힘든 귀한 것들이었다.

그때는 그것들 한 통만 얻어도 감격에 겨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감격해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흔하디흔한 물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도, 금도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여기는 때도 올 것이다.

이미 500년 전에 최영 장군은 그런 세상을 본 것 같다.

그랬기에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감격이 있으면 좋겠다.

보고 또 봐도, 많고 많아도, 언제나 볼 수 있어도, 볼 때마다 감격스러운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건 바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곁에 침투하려고 했던 JMS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