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아쉬운 듯하고 조금은 부족한 듯하게

by 박은석


캥거루와 사람이 권투를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신기했다.

캥거루가 앞발을 들고 일어설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권투라는 얄팍한 상술을 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호주에서는 캥거루들끼리 권투를 많이 한다고 한다.

다른 짐승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듯이 캥거루는 상대방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치고받다가도 캥거루들이 얌전하고 사이좋게 앉아 있기도 한다.

그때는 캥거루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까 캥거루는 상대방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볼 때는 권투를 하고, 상대방의 얼굴을 살짝 비껴서 바라보거나 할 때는 사이좋은 모습으로 지낸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캥거루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 괜히 신경질이 난다.

시비가 붙기도 한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 더 친근감이 들 것 같은데 모든 관계가 그렇게 형성되지는 않는다.

물론 아주 가까운 사이라면 얼굴을 쳐다보는 게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서로 낯선 관계일 때는 얼굴을 쳐다보는 게 실례가 되기도 하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왜 쳐다보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탔을 때 옆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만원 버스를 타도 최대한 옆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마주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고개를 들어서 천정을 보거나 고개를 숙여서 바닥을 보거나 아무런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 번호판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봤다가는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옆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보다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을 때가 더욱 편안하다.

나도 그렇고 옆 사람도 그렇다.

굳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듯이 옆 사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보다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평면적인 얼굴만 보이지만 살짝 옆에서 보면 입체적인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앞모습을 볼 때보다 옆모습을 옆에서 볼 때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도 몸을 살짝 비틀어서 찍으면 사진빨이 더 좋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 독일의 지휘자 카라얀은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때 정면에서 찍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카라얀의 사진을 보면 죄다 옆모습이다.

고뇌에 찬 듯한 표정이기도 하고 깊은 묵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굳건한 확신을 얻은 것 같은 모습 같기도 하다.

그 옆모습 사진에 사람들이 빨려 들어간다.




완벽한 것이 좋고 정확한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조금은 서툰 것이 좋고 조금은 부족한 것이 좋다.

내 앞에 조금 서툰 사람이 보이면 왠지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금 부족한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남들도 나를 보면서 그럴 것 같다.

그러니까 불완전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고 부족한 내가 지금까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어렸을 때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신 말씀이 있다.

조금 더 먹고 싶을 때 숟가락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이었다.

그때가 가장 적당한 만큼 먹은 때라고 하셨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하지 말자.

너무 뚜렷한 것을 추구하지 말자.

선명한 사진에서는 아주 작은 잡티도 크게 보이지만 흐릿한 사진에서는 큰 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은 아쉬운 듯하고 조금은 부족한 듯할 때가 가장 좋을 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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